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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순휘 정치학박사
100주년을 맞은 3·1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한반도체제는 대립과 갈등을 끝낸 새로운 평화협력 공동체"라며 "한결같은 의지와 긴밀한 한미 공조, 북·미 대화 타결과 국제사회 지지를 토대로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신한반도체제라는 신조어는 정치인으로서 의지는 가상하나 한편으로는 이상주의적 발상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신한반도체제의 정의를 ‘대립과 갈등을 끝낸 새로운 평화협력 공동체’로 했지만 남북 분단시대의 대립과 갈등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것이 전제된다. 북한이라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나 홀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적대적(敵對的) 관계에서는 상호 신뢰라는 필요충분 조건 없이 대립과 갈등이 상쇄되고 평화협력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것은 무모한 기대이거나 불확실성이 농후한 시간낭비가 될 것이다. 남북관계는 한일관계나 북일관계와는 근본적으로 판이 다르다. 한일관계나 북미관계는 넌제로섬게임(Non-Zero-Sum Game)이라서 반드시 손익을 볼 필요는 없지만 남북관계는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손해보겠다고 하기 전에는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문 정부가 최근의 남북관계를 이끌어가는 행태는 제로섬게임도 하겠다는 과거의 ‘햇볕정책(sunshine policy)’보다 더 진보된 정책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보려고 달려든 점이 있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에서 드러난 진실게임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안보리의 철저한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경제가 위기로 치닫자 미국과의 군사적인 충돌과 국제제재를 피하면서 경제적 실리를 챙기려는 스몰딜(small deal)과 중간딜(midium deal)로 비핵화의 시간을 벌다가 적절한 상황 변화에서 핵국가로 인정받고,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굳히겠다는 전략전술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북한의 진의를 파악한 현실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국가안보의 대응책은 어설픈 중재자의 스탠스가 아니라 북한과의 명확한 선을 긋고 레짐체인지를 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신한반도체제’라는 것은 군사외교 문제를 제외하고 경제공동체니 문화예술스포츠 공동체를 남북관계의 선행 사업식으로 평화 띄우기로 가면서 북한을 설득하겠다는 것은 불가하다. 국민들은 한미연합훈련은 중지되고, 한미동맹의 흔들림을 목격하면서 신한반도체제가 자칫 동맹분열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하고 있다. 신한반도체제라는 신조어가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는 국제적 갈등 유발이 돼 오히려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에 적용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것이다. 헌법상에 대한민국의 국가 목표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로 명기돼 있다. ‘평화적 통일’은 절대로 ‘평화적 분단’이 아니다. 평화적이라면 남북 대립과 갈등이 끝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스포츠경기에서 단일팀이나 구성하고, GP를 폭파하고, 남북철도나 연결한다고 마치 평화가 다 된 것 같은 선전선동은 분별력이 요구된다.

 판문점선언-싱가포르 공동성명-평양선언에서 마치 남북은 내부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이룬 것처럼 기대했지만 막상 하노이회담에서 북한의 핵무장 불포기라는 기만전술을 알게 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군사력의 절대 우위에서 겁박하면서 적화노선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대북 비핵화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하노이 협상에 대해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미국·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했는데 제로섬게임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코 낮은 단계의 연방제 같은 분단 고착화는 있을 수 없다. 차라리 4·27 판문점선언에 합의한 남북 재래식무기의 ‘군축실현’을 위한 남북 군축협상부터 시작하는 넌제로섬게임으로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를 창출하는 길이 실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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