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동부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수년 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됐고, 영화의 주 스토리를 이뤘던 내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병자호란 당시 굴욕의 역사가 담겼다.

이처럼 치욕적인 역사의 상징으로만 남았던 남한산성은 거꾸로 보면 끝까지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버텼던 항쟁의 마지막 보루였다.

1636년(병자년) 12월 청 태종이 2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대피해 적의 포위 속에서 혹한과 싸우며 버텼다. 하지만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결국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에 항복하면서 전쟁이 끝났고, 이에 남한산성은 외세의 침략에 무릎 꿇은 우리 민족의 아픔의 장소로 기억돼 왔다.

하지만 길게 보면 2천여 년 전 백제가 세워졌던 시기부터 남한산성은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요새이자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4대 요새로서 국가의 비상상황을 대비할 수 있는 방어선이 돼 왔던 곳으로, 남한산성에서의 아픈 역사는 후대에서 우리의 자존감을 되찾기 위한 북벌론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 저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남한산성의 의미를 다시 성찰해 본다.

본보는 10회에 걸쳐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의 역사를 살펴보고, 민간 전문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남한산성이 가진 유물적·미래 가치에 대해 전한다.

정진욱 기자 panic82@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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