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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세원 수원보호관찰소 성남지소 서무계장
"하나님, 제가 지금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제 남편과 자녀들을 지킬 수 있도록 저에게 용기와 계시를 주시옵소서."

 40년 전 전남 여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작은 방 한 칸에서 다섯 식구가 쪽잠을 자던 시절이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2남1녀에게 김이 모락나는 밥과 오뎅반찬이라도 먹이고자 하는 부모의 모습이 세월의 흐름을 알게된 지금 아직도 나의 눈에 선하다. 부푼 꿈을 안고 입학하던 대학 시절, 나의 아버지는 중국 여성과 한국 남성의 연을 이어주는 국제결혼 사업을 하셨고, 소득 없이 지출만 많았던 그 사업은 결국 우리 가족 일생 최대의 사건을 낳았다. 가정폭력에 시달린 중국 여성이 야반도주하자 그 남자는 칼 두 자루를 소지한 채 몰래 집에 들어와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어머니에게 여성을 찾아달라며 옆구리를 가격했다.

 집 앞 공중전화 부스로 유인했음에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인생의 끝을 예고하며 어머니는 기도했다. 범죄자가 내 집 옆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그렇지만,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일상의 찌듦으로 그 생각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범죄 피해자들에게는 더 견디기 힘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두려움도 이겨낼 용기’를 줬다. 범죄자를 관리하는 일을 꿈꿨고, 기나긴 준비 끝에 ‘보호관찰관’이 됐다. 보호관찰관은 대상자들이 사회에 빨리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 자원과 연계해 다양한 도움을 주고, 그들이 또다시 재범하지 않도록 많은 애정을 쏟아붓는 조력자이자 관리자다.

 지난 2015년, 다른 기관에서 뉴스로만 봤던 뜨거운 감자, 성남보호관찰소로 발령받았다. 성남보호관찰소는 2013년 9월 분당구 서현동으로 이전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청사에 입주하지 못하고, 그해 12월부터 성남시청, 서울, 수원 등에 직원들이 분산돼 근무하고 있다. 성남시청사에 마련된 작은 사무실은 어린 시절 태어나고 자랐던 작은 방 한 칸을 연상케 한다. 우연찮게 마침 사무실 옆에는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하는 체력단련실이 있어, 준비체조 소리와 TV소음 등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보호관찰은 지역사회와 불가분의 관계고, 지역사회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제도임에도 성남에서는 기피시설로 인식돼 도움은 고사하고, 그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외부 손님이 와도 앉을 자리도 없다. 행정업무를 위한 각종 회의 때도 타 지역 사무실을 빌리거나, 시청 내 공용회의실을 대관하는 등 쉽지 않은 과정의 연속이다.

 관리대상자 증가에 따라 분산 근무 전보다 2배 가까이 직원이 늘어났지만, 신규 직원이 와도 이제는 책상 놓을 공간도 없다. 이런 까닭에 최근 성남보호관찰소에서 관리하는 야탑동 청사 내 문서고를 이전하고, 직원과 외부 위원들의 회의실을 마련하고자 했다. 지역주민들은 "회의실이 마련되면 보호관찰소 업무 전체가 들어오는 것 아니냐"며 반대 집회를 지속하고 있고, 청사 문제는 또다시 연일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법무부와 보호관찰소의 공통점을 주민들은 잘 알고 있다. ‘ㅂ(비읍)’으로 시작된다는 것, 시민들은 ‘법’, ‘ㅂ(비읍)’자도 처다보기 싫다고들 한다.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책무가 있는 지역사회 범죄예방 기관인 보호관찰소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가끔 대상자의 범죄로 인해 시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두렵다. 그리고 그 피해가 가장 아끼는 나의 가족, 친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두렵다. 하물며 막상 사고가 났을 때 시민들로부터 ‘보호관찰 제도 허술’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도 두렵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나에게는 나의 어머니,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더 나아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도 이겨낼 용기, 나는 자랑스러운 보호관찰관이다. 하루빨리 성남보호관찰소 문제가 해결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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