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1.jpg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사드 배치로 불거진 한중 관계는 지금껏 양국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엄청난 회오리를 불러 일으켰고, 끝내는 동북아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켜 왔다. 근래 중국 관광객의 예전 수준 입국이나 수출입에서 호전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한중 양국의 우호는 살얼음판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대체적 인식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관계를 해소시키는 묘약은 물론 있을 리 없을 것이나 그래도 내일을 위해 개선점을 찾고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려면 무엇보다 양국 국민의 민간 교류나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주 국립극장에서 개막되는 국립창극단 신작 ‘패왕별희’는 나름 의미가 크다. ‘경극 중의 경극’으로 불리는 ‘패왕별희’가 판소리 버전으로 가능할까라는 의구심도 있을 수 있다. 경극은 배우의 동작 하나하나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중국의 전통극이고, 창극은 구성진 판소리 가락이 핵심을 이루는 우리의 전통극이 조화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으니’ 하는 초·한 쟁패시대의 항우,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우희와 이별을 나누는 가운데 숱한 스토리를 보여주는 ‘패왕별희’는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으나 그것이 우리의 전통과 어울려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인지는 궁금할 수밖에.

 초패왕 항우는 어떤 인물인가? 역사의 무대에서 그는 힘과 기개가 단연 상대를 압도하고 넘쳤으나 끝내 명참모 한 사람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뒷골목의 건달이나 다름없었던 유방에게 패한 비운의 인물이자 동시에 리더십에서 형편없는 몰골을 보여준 제왕으로 꼽힌다. 물론 중국 역사의 원조 격인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은 그를 제왕으로 대접하고 이후 중국사에서 영웅으로 모시고 있긴 하다. 이번 ‘패왕별희’의 연출을 담당하는 타이완 배우이자 연출가인 오흥국(吳興國)은 작년 12월부터 함께 작업을 해온 음악감독인 이자람 소리꾼에 대해 "작업을 하면 할수록 서로의 전통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면서 "판소리의 생명력, 용감한 민족성이 느껴지는 웅장함에 매번 감동을 느끼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판소리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항우의 영웅됨이 잘 조화될 수 있다는 말일 텐데 공감이 간다. 무엇보다도 항우의 패기와 기개만큼은 중국사의 영웅들 가운에서 단연 손꼽을 수 있으니 말이다. ‘경극과 판소리’의 조화는 한중 전통문화가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색다른 발견임이 틀림없다. 워낙 이질적 요소가 강한 두 장르가 조회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 더욱 그렇다. 한중 양국의 정치·외교군사적 관계는 요즘 신통치 못하다. 중국 초계기가 우리 항공 주권을 빈번히 침범하는 일부터 중국 해군력의 증강도 위협적이다. 외교 관계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으니 우리에게 호의적일 수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경제를 비롯해 미세먼지 등 서로에게 협력이 필요한 분야도 속을 들여다 보면 갈등적 요소가 산재해 있다. 전통극 하나가 이질적 요소를 슬기롭게 조화시킨다고 해서 한중 양국의 문화적 소통과 교류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리라 기대하는 건 분명 성급하다.

 하지만 신선한 충격과 기회임은 틀림없지 않은가. 이런 기회를 적극 활용하려는 노력은 소중하다. 들리는 바로 퍼시픽링스 인터내셔설 왕월(王月) 회장의 올해 회원 5천 명의 ‘제주 골프여행’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천 명 이상이 제주를 찾아 경제적 효과가 50억 원, 면세점과 지역 전통시장 이용 등으로 총 100억 원 정도를 쓰고 갔다고 한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가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나 이런 기회를 적극 활용하고 확대하려는 노력은 정말로 소중한 관광사업이자 민간교류일 수 있지 않은가. 일찍이 영국의 러셀은 "중국인은 믿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철저히 의심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일단 믿기 시작하면 의심 없이 최선을 다한다고도 했었다. 한중의 새로운 우호는 싹을 틔우고 가꿀 때 빨리 올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