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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계봉 시인

혹시 당신은 봄날의 기적을 경험한 적 있습니까. 오래 전 어느 봄날, 나는 1차 등록 기간을 지나친 채 추가 등록 마감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감 하루 전까지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노천극장 계단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 과사무실에 들러 휴학 신청서를 받아 책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온갖 고뇌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 같은 표정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한동안 찾을 일이 없을 교내 식당에 들렀습니다. 당시 나는 현실의 무게와는 별개로 집요하게 찾아들던 천연덕스러운 허기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을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때 우연찮게도 내 앞자리에서 교내서점 사장님도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자주 서점을 드나들던 나를 알아보고는 눈인사를 해왔습니다. 나도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인사를 드리고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문 군, 무슨 고민 있어요? 표정이 어둡네. 평소의 문 군답지 않아"라며 아버지 같은 얼굴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때 찰나적으로 나는, 아니 나의 본능은 실낱 같은 희망이 내 정서의 미늘에 운명처럼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명증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와 튼실한 밧줄을 구별할 리는 만무한 법이지요. 그래요. 당시 내 기분은 대책 없이 익사를 기다리는 절박한 상황에서 지푸라기인지 밧줄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나를 당면한 질곡에서 구해줄 희망의 끈이 불쑥 나에게 드리워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나는 숟가락을 든 채 내 처지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러나 최대한 내 절박함이 상대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사장님은 문득 아버님의 연세와 하시는 일을 물어오더군요. 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도 사실대로 말씀 드렸습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던 그분은 "내가 빌려 드릴게요. 기한은 정하지 않을 테니 형편 되는 대로 돌려주세요. 식사 끝나는 대로 서점으로 오세요"하시며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때의 감동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격동하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안도와 기쁨, 인간에 대한 믿음과 고마움 등 한동안 나를 등졌다고 생각했던 밝은 단어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은 벅찬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사장님 도움으로 마감 하루 전 등록을 마쳤습니다. 이후 친구들과 일일찻집도 벌이고 아르바이트를 한 결과 갚아야 할 돈을 세 달 만에 모을 수 있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갈 때쯤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사장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버무려진 마음으로 서점을 찾아 빌려주신 돈을 갚겠다고 하자 사장님은 다음 학기 등록금도 어찌될지 모르니 졸업 후 취직해서 갚아도 된다고 하며 한사코 받질 않는 거였습니다. 다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사장님은 빌려줄 때부터 되받을 생각이 없으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나는 끝내 그 돈을 갚질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 내 삶에 불어 닥친 정치적 소용돌이와 당대의 현실이 부과한 책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운 것이었고 사장님 또한 서점을 그만 두고 학교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사실 이건 변명에 불과한 말일 것입니다. 나중에라도 찾고자 노력했다면 못 찾을 일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이지요.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려다가 적당한 시점을 놓치면 다시 하기 어색해지는, 뭐 그런 것과 유사한 상황이었다고 변명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마음의 빚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사장님이 그랬던 것처럼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을 생색내지 않고 도와주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입니다. 당시는 사복 경찰이 교정 곳곳 은밀하게 숨어 학생들을 감시하던 미친 시대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근본부터 회의하게 만드는 암울한 독재 시절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역설적이게도 그 파렴치하고 을씨년스러운 시대 한복판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따뜻함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모진 세파와 강퍅해진 인심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라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렇듯 선의를 베풀며 살아가고 있는 사장님 같은 분 때문일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본관 앞 벚꽃들은 개화 전이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관목들만이 여린 꽃눈을 내밀기 시작하던, 꼭 요즘같이 눈 시린 어느 봄날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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