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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정경부장
전국 최초의 자치단체 공동 브랜드 ‘어울’ 화장품을 두고 말꼬리가 물고 물린다. ‘어울’의 운영사 선정을 놓고 이런저런 뒷얘기가 들썩인다. 잠재우기식 토 달기에서 특혜성 의혹까지 분분하다. 연 매출 22억 원(지난해 기준)밖에 안 되는 브랜드를 놓고 웬 법석이냐는 방어적 타이름이다. 당을 달리한 집권 시(市) 정부가 덮어놓고 전 정권을 지우고 있다는 공격적 수근거림도 있다.

 논쟁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어울’ 화장품의 성장 잠재력과 그것에 기댄 지역 영세 제조사들의 바람이 실려서다. 인천에는 크고 작은 화장품 제조공장이 200여 곳이 있다. 경기도 다음으로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 인천이다. 유통판매까지 합하면 1만 개의 업소가 있다. 결코 가벼이 볼 수도, 봐서도 안되는 산업이 인천의 화장품이다.

 인천시와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인천TP)는 지난 1일 ‘어울’ 화장품 새 운영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했다. 기존 운영자와의 계약 기한이 지난해 말일이었다. 세 달가량 뜸을 들인 것이다. 새 운영사 선정의 직접적인 계기는 매출급락이다.

 2018년 어울 화장품의 매출액은 22억5천900만 원이었다. 2017년 매출액(50억1천800만 원)과 민간 운영사 위탁 첫해인 2016년 매출액(50억2천800만 원)의 절반 정도다. 매출저조는 해외시장의 다변화 실패와 국내 경쟁력 상실 등 여러 이유를 들 수 있다. 그 중 직격탄은 사드 갈등에 따른 중국시장 판로 위축이었다. 외부적 요인이 더 컸던 것이다.

 여기서 곱씹어야 할 일이 있다. 새 운영사 선정 전 매출증대를 위해서 얼마나 준비하고 노력했느냐이다. 영세 제조사는 계약을 하고도 해외로 수출하지 못한 화장품 재고를 쌓아놓고 있다. 새 운영사 선정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들 제조사는 도산 직전이다.

 인천TP는 4천500만 원을 들인 용역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울’ 중장기 운영 방안 수립 용역은 새 운영사 선정의 현실적 대안으로 제조사·운영사·마케팅사의 합작인 ‘컨소시엄’이 아니라 ‘단일기업’ 형태를 주문했다. 컨소시엄 형태의 새 운영사가 지금까지 거론된 약점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당장 가장 큰 시장인 중국 수출을 위해 필요한 위생허가부터 걸림돌이다. 중국 정부의 위생허가를 받기 위해선 짧게는 6개월에서 1년 6개월이 걸린다. 새 운영사가 올해 ‘어울’을 중국에 수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 간 셈이다. 제품 가격과 유통망의 안정성도 담보할 수 없는 처지다. 매출부진 원인을 단지 운영사 탓으로 돌려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나 하는 감도 없지 않다. ‘어울’ 화장품의 경쟁력은 운영사 혼자에서 나올 수 없다. ‘어울’ 화장품의 최종 관리자는 인천시다. 그 밑 수탁기관이 인천TP이다. 그동안 두 기관의 역할은 헐거웠던 게 사실이다. 그 책임에 대한 회피는 운영사 갈아치우기로 귀결됐다. 기다림은 없었고, 큰 화(禍)의 배태였다.

 주역(周易)에 ‘수천수(水天需)’라는 대성괘(大成卦)가 있다. 물을 의미하는 ‘감(坎)’괘가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 위에 포개진 상(象)이다. ‘수(需)’는 ‘수(須)’와 같이 ‘기다림’을 말한다. 하늘 위에 있는 물이라면 구름일게다. 이 구름은 아직 비(雨)로 자라지 못했다. 땅 위의 만물을 적셔주는 비가 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이 기다림은 그저 막연하게 멍하니 시간만 죽이는 그런 대기 상태가 아니다. 준비가 없으면 기다릴 ‘때’도 없다는 것이다. 땐 굴뚝이라야 연기가 나고, 심은 씨앗이라야 싹이 크기를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기다린다는 말은 힘을 기른다는 의미다. 거기에는 노력의 누적과 발전의 단계를 밟는 숙성의 시간이 있다. ‘어울’이 지키지 못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천수송(天水訟)’이라는 괘가 있다. ‘수천수’를 뒤집어 놓은 괘다. 위에 건괘가, 아래는 감괘가 있다. 위에 있는 강한 자가 아랫사람을 학대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과 싸우려는 형상이다. 재판을 의미하는 ‘송’은 자신의 성실성이 남에게 통하지 않고 방해되는 데서 생긴다. 기다림 없던 ‘어울’이 싸움으로 번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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