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은 타자성(他者性)과 포용성이 공존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이 같은 부평의 역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내 고장, 내 고향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이번 도시재생의 관건입니다."

 박명식 인천부평문화재단 이사가 ‘부평 11번가 도시재생사업’을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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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부평1동에서 태어난 박 이사는 지난 58년간 인천시 부평구를 떠난 적이 없다. 1900년대 초반부터 5대째 이곳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본토박이’이자 ‘부평통(通)’으로 정평이 난 그다.

 그는 부평동초등학교를 거쳐 부평중학교를 마치고 공교롭게도 동산고등학교에 배정됐다. ‘부평 사람’인 그가 ‘인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구의 학교를 다녔으니 당시 문화적 충격(컬처쇼크)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개항장 일대 항만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됐다.

 성인이 된 그는 지역농협에서 주로 근무했다. 하지만 그의 부평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박 이사는 부평학(富平學) 스토리텔러 1호로 불린다. 주민자치위원장도 맡았고, 인천캠프마켓시민참여위원회와 부평굴포천복원협의회, 인천도시재생심의위원회 등에서 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부평문화재단을 비롯해 부평문화원, 부평아트센터 후원회에서도 중책을 맡고 있다. 그가 말하는 도시재생은 그래서 본질적인 것을 파고든다.

 박 이사는 "10년 전부터 부평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며 "선생님들도 모르고 아이들도 모르는 부평의 역사, 내 고향 바로 알기가 도시재생의 시작점이다"라고 했다.

 그는 "뉴딜사업을 벌이고 있는 남동구 만부마을 활동가들의 얘기를 들어 봐도 가장 힘든 점은 ‘공동체지수’를 끌어올리는 것"이라며 "산업화와 상업화 등으로 파괴된 공동체를 되살리지 못하면 도시재생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 세계 36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공동체지수에서 한국은 맨 꼴찌인 36위(72%)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1∼3위는 아일랜드, 스위스,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휩쓸었다. 공동체지수는 인적·물적·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어려울 때 기꺼이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낸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고립, 이기주의 등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박 이사는 "부평의 주택 난개발과 이로 인한 주차장 부족은 주민 간 불화를 키워 왔고, 부평의 인심을 흉흉하게 만든 대표적 도시계획의 실패"라며 "한때 인구 59만 명을 육박했던 부평이 이제는 52만여 명으로 5만∼6만 명의 인구가 줄었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이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앞으로 5년간 전국 500곳의 도시재생지역에 50조 원을 투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게 박 이사의 생각이다. 그는 미군 부대인 부평 캠프 마켓을 예로 들었다.

 박 이사는 "다 때려 부수고 하는 재개발·재건축은 그 동네를 살리는 게 아니다"라며 "협의회로 시작한 캠프마켓재생모임을 위원회로 격상시켜 그 존립을 안정적으로 했고, 그 속에서 시민들과 문화공원으로서의 캠프 마켓 재생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했다.

 문화공원으로 지정해야 캠프 마켓 내 100여 채의 건물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재생해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 건물은 문화·예술·역사 관련 활동가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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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이사는 "연간 5천만 명이 다녀가는 미국의 센트럴파크와 타임스퀘어는 95% 이상 지역주민들이 참여해 관리·운영하고 공무원은 약 5%의 행정지원을 담당하고 있다"며 "우리도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도시재생사업을 해야 하고, 그래야 내 고장 바로 알기와 공동체지수가 동시에 높아진다"고 했다.

 굴포천 재생사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외세 열강의 침략과 간섭에 시달려 온 부평이 지금 갖고 있는 성장 동력은 수출4공단(부평국가산단)과 한국지엠을 제외하고는 찾기 힘들다"며 "52만 명의 인구가 서울·경기에 의존해서 살아가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이사가 결국 부평1동에서 시작해 굴포천 복개구간, 부평 미군기지, 부평6주택재개발 정비구역, 부평구청, 굴포먹거리타운에 이르는 이번 재생사업이 ‘문화·관광형’으로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박 이사는 "한때 부평의 약 50%를 차지했던 미군 기지(애스컴시티)는 일제의 조병창 부지에 눌러앉은 형국이었고, 한국전쟁 이후 전국 곳곳에 미군 기지가 들어섰던 것에 비해 해방 직후부터 부평에 미군이 주둔한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했다.

 또 120년의 역사를 지닌 최초의 철도 경인전철 부평역을 비롯해 열우물로 불리던 십정동에 얽힌 전설과 그 뒤편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던 염전 이야기, 농경문화가 부평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배경, 부평벌이 한때 물고기가 넘치던 물의 도시였던 점 등을 체계적으로 스토리화해야 한다고 했다. 부평이씨와 목상동에 얽힌 이야기, 부평벌과 개성·한양을 오가던 보부상의 이야기가 담긴 징매이고개, 임꺽정과 천명고개, 약초로 유명한 사자쑥 이야기, 부평 수리조합과 농민조합 등 끝도 없는 스토리가 부평에 있다고 했다.

 박 이사는 "11번가 도시재생은 기본계획이 잘 잡혀 있다"며 "문제는 주민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살려서 주민 중심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이어 "1970년대 시작된 독일 베를린 왕국 복원사업의 최초 주민참여율은 5%였지만 나중에는 90%가 넘는 주민들이 참여했다"며 "왕국의 복원은 제국주의의 복원이 아니라 결국 주민들의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가 부평 역사 강의를 10년이 넘게 이곳저곳에서 하며 한편에서는 각 도시재생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배경이다.

 그는 "희망이 우리 앞에 있지만 과거 방식으로 지도자가, 정치인이 ‘갑시다’ 한다고 가는 그런 시대가 더 이상 아니다"라며 "주민이 중심에 서고 정치와 행정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조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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