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차별하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평가받아온 낙태죄가 호주제, 간통죄에 이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 전면 금지는 헌법에 어긋나며, 임신 초기의 낙태는 허용해야 한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헌법에 어긋난다"라며, "2020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는 주문도 했다. 이로써 우리 사회는 2012년 ‘낙태죄 합헌 선언’ 이후 7년 만에 정반대의 결론에 직면하게 됐다. 당시와 달라진 판단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무조건 우선시 돼선 안된다는 것, 태아의 생명권을 임신 기간에 따라 달리 볼 여지가 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의학계 의견을 근거로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준을 ‘임신 22주’로 제시했다. 반면 종교계는 "태아의 존재는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으로, 이미 수정된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라며 이번 판결에 유감을 표시했다. 또한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오히려 여성에게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는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출산의 전 과정이 여성 자신의 신체를 통해 100% 이뤄지는 상황에서 ‘제3자의 신념이 개입하는 비합리성’이 그것이다. 즉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사회 규범이나 윤리적 잣대가 ‘출산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과 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하고, 심지어 자기결정권까지 침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당한가’라는 점이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여성에게 더 해롭다는 식의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낙태를 불법화한 국가일수록 ‘안전하지 못한’ 낙태수술로 모성사망률이나 합병증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건 이미 여러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선 사전적으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막을 수 있도록 성교육과 피임교육부터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후적으로는 낙태의 허용기간 및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명시화하고, 낙태 전 상담제도부터 낙태의 절차, 장소, 시술에 관한 규정까지 세밀한 후속 작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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