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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뭔지

신영옥 인천문인협회 이사/시인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4월 16일 화요일 제11면

신영옥 인천문인협회 이사.jpg
▲ 신영옥 인천문인협회 이사
강물처럼 흐르는 그리움이 있다. 내 다하지 못한 공부를 딸에게 성취하고자 멀리 유학을 보내 놓고 이렇게 외로움을 타며 보고 싶어 한다. 지구 저편에 우리가 사는 쪽 하고는 반대인 13시간의 시차가 있는 거대한 세상, 미국 뉴욕이란 이름이 꿈속같이 멀게만 생각되는 곳에 보내 놓고, 낮이면 낮으로 밤이면 밤마다 걱정 반 궁금 반으로 생각이 떠날 날이 없다.

 다행히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메신저로 모습을 보며 그리움을 풀어내곤 한다. 하지만 화면으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왠지 시원치 않는 거리감을 준다. 전파를 통해서 오는 체취의 숨결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누가 들으면 호사스러운 청승을 떤다 할지 모르나, 어찌하든 옆에 있지 않으니 보고픔이 하늘만큼 땅만큼이다.

 요전에는 길에서 딸의 친구를 만났다. 인사하며 방긋이 웃는 그 애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유모차에다 한 아이는 앉히고 또 한 아이는 엄마 곁을 졸랑졸랑 붙어간다. 뒷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동시에 딸아이가 더욱 애틋하게 생각이 난다.

 우리 딸도 전공을 살리겠다고 떠나지만 않았다면 저렇게 결혼을 해서 한 사람의 아내가 되어 아들, 딸을 낳고 순조로운 가정을 이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괜스레 마음이 속상하고 저려온다. 아마도 그것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여자는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남편 사랑 받으며 살림하는 생활이 평범하면서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리라.

 국내에서 명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 심심찮게 혼담이 들어왔다. 그러나 혼인을 마다하고 혼수비로 공부를 더 하고 싶다 하기에, 나 또한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즐겁게 승낙을 해 버렸다. 유학생활이 기껏 2년 내지 3년이면 끝낼 줄 알았던 세월이 여자 나이 삼 십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충족시키는 내 욕심으로 하여 팔자에 없는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끝없이 후회를 했다. 하지만 이왕지사 목적을 향해 걷고 있는 시점을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로 인하여 저나 나나 외로움을 먹고 사는 마음고생이 돼버렸다

 오늘처럼 이토록 유난히 보고 싶음이 클 때는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다. 날아가서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예쁘게 가꿔 줘야지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마음만 쌓이고 새김질만 할 뿐 졸업하는 날만 기다리게 됐다.

 어쩌다 백화점에서 모녀가 같이 쇼핑을 하거나 목욕탕에서 서로 등 밀어주는 다정한 모습을 보면, 우리 딸도 착해서 곁에 있으면 저렇게 해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날은 딸의 방에 들어가 전에 쓰던 소지품들을 꺼내어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런데 딸아이는 이 어미가 생각하는 만큼 그립거나 외롭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그보다도 엄마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쌀쌀맞게 대한다. 대부분 전화를 받는 쪽이지 먼저 전화해서 "엄마~ 보고 싶어" 하는 소리를 3년이 넘도록 듣지를 못했다.

 전에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부리나케 현관문을 열면서 엄마~하고 눈에 등을 켜들고 찾아들었다. 그러던 딸애가 자석처럼 달라붙던 마음이 사라진 듯싶다. 나는 지금도 엄마~하고 찾는 그 흔한 음성이 귀에서 맴도는데. 한번은 대화하던 중에 서운하다며 쓴소리를 좀 했더니 뽀로통 해갖고 "엄마!, 학교에 들어가면 무조건 석·박사 학위가 그냥 나오는 줄 아세요?"한다. 냉정하게 쏘아붙이는 그 성질은 영락없는 지 아버지의 닮음이다. 무심히 내던진 말이지만 그 소리를 듣고는 어찌나 서운한지, 싸늘한 열기가 맴도는 걸 꾹 참았다.

 물론 공부가 그리 쉽지는 않을 거라 이해하면서도 무정하다는 생각에 야속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바쁘니까 그렇겠지, 또는 내 속으로 난 자식인데 잊을 리가 없지, 하며 스스로 마음을 풀면서도 품안의 자식이란 말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남들은 모녀지간이 친구 같은 사이로 아무 말이나 다 쏟아놓으며 지낸다는데, 나는 그런 복이 없는가 보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멀리 타국에 보내놓고, 아들들은 제 가정을 보살피기에 여념이 없고, 홀로 있는 시간이 외로움으로 그득하다. 하여간 자식들이 뭔지 밉다가도 그리워지고 서운하다가도 정이 가고 그리움이 미움이 강물처럼 흐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 : 1993년 창작수필로 수필 등단/2010년 만다라문학상으로 시 등단/2011년 알베르카뮈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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