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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전통시장의 역할이 도시의 성장에 따라 낙후된다는 생각은 의외로 넓고 깊게 퍼져 있다. 상인들 스스로 전통시장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배운 것이 모자라 입에 풀칠하기’ 위해 장사한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과연 그럴까?

중국의 옛 재래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 외에 혼담(婚談)의 중요한 기능을 했고, 개항기 이후 조선 상인들의 저항은 항일운동의 중추적 기능을 했으며, 아직도 일본의 시장 주변에는 금융시설, 학교, 위생시설, 관공서, 다양한 상설 점포들이 있어 지역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오늘날 세계 각국의 유명한 전통시장들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핵심지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것은 전통시장만이 아니다. 오히려 변신을 통해 도시의 성공은 물론 지역사회를 살리고 국가경제를 살찌우는 예는 무수히 많다.

시장이 생긴 지 1천 년이 넘는 두 곳의 전통시장, 불행히도 한국의 경우는 아니지만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곳과 영국 런던의 한 곳을 통해 변신과 성공의 궤적을 찾아가 살펴보자.

리스본의 전통시장은 1100년에 생겼다. 20년 전 도매시장 기능이 외곽으로 빠지자 제 역할을 못하고 침체되기 시작했다. 시 당국은 사업자 공모에 나섰고, 사업권은 여행 관련 잡지로 유명한 ‘타임아웃’이란 회사가 따냈다. 잡지를 잘 만든다고 전통시장을 제대로 되살릴 수 있을까 하고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9년 전 이 회사는 시장에 있는 전체 건물 절반은 채소·생선 등 기존의 전통시장 기능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공간에는 푸드 코트를 계획해 5년 전 드디어 오픈했다.

전통시장이 운영되는 낮 시간에는 신선한 농산물 등 식자재 구매를 하는 고객들을 겨냥해 젊은 요리사들이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는 타임아웃마켓에서 요기하는 반나절 코스를 운영하는 한편 종종 콘서트를 열거나 취미 클래스를 여는 이벤트 장소로 활용해 집객 효과를 꾀했다. 연중무휴에 자정까지 여는 푸드코트는 이제 리스본에서 꼭 찾아가 볼 만한 음식점 1위에 올랐고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러자 특산물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입힌 기념품 상점까지 열어 고객 유치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1천 년의 재래전통시장이 변신에 성공해 세계적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런던의 템스 강 남쪽에 있는 ‘버러마켓’은 역시 1천 년의 역사뿐만 아니라 최고의 식품시장으로 꼽힌다. 신선함을 앞세운 유기농 채소와 과일, 제대로 된 방식으로 방목했다는 쇠고기와 직접 만든 소시지 등 먹거리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상설 점포나 이동식 거래 매장 등 형태는 다양하지만 철저한 신뢰를 바탕으로 주인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인다. 온라인 홈페이지에는 이 시장에서 구입한 식자재로 만들 수 있는 요리법까지 등장한다. 길거리에 이동식 점포가 즐비하고 맛집과 카페 등이 어우러져 이곳을 한 번 이용한 요리사들은 이곳에서만 식자재를 구매할 정도로 명성이 높다. 자부심 강한 상인들과 시대적 변천에 따른 변신의 진정성이 고객들에게 전해진 것이 성공의 요인인 것이다.

경제적인 효율성만이 가치판단의 유일한 가늠자가 돼 버린 작금의 한국 풍토에서 전통시장은 언제 재개발이나 도시재생의 명분하에 자기의 공간에서 밀려날지 모르려니와 자부심을 잃어버린 상인들에게서 고객이 기대할 바가 뭐 있겠느냐. 결국 자신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외부에 존재하는 힘 있는 자들의 이익을 위해 결정될 운명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는 투의 상황에서 변신이 성공을 가져오리라 희망하는 것이야말로 숲에서 물고기를 찾는 어리석음에 다름 아니냐고 여길지 모른다. 결코 그렇지 않다. 포르투갈 리스본이나 영국 런던에서 보듯이 얼마든지 전통시장이 시대 변화 속에서 더욱 유명해지고 성공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어설픈 현대화를 내걸고 시장 상인들에게 무슨 상품권이라든지, 절세를 위한 강좌라든지, 매매 기술을 돕는 부동산 거래학(?) 따위를 신주 모시듯 하는 풍토가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재래시장에도 인문학 바람이 불어야 한다. 자신의 장점을 확장시키려 하지 않고 대형 쇼핑몰 성공 사례나 벤치마킹하고, 얍삽한 기능성 교육, 편의주의식 대처로는 공염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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