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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 한결같이 화끈한 네가 생각나~

동구 ‘우순임 원조 할머니 쭈꾸미’

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2019년 04월 19일 금요일 제15면

‘꽁꽁 얼어붙은 겨울을 지나 따뜻하고 나른한 봄에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무엇일까.’

 3~5월 가장 살이 오동통하게 붙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고, 먹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제철 식(食)재료 또한 궁금하다. ‘주꾸미’를 추천해 본다. 주꾸미는 영양성분 ‘타우린’이 많아 피로 회복이나 숙취 해소에 안성맞춤인 식재료다. 그래서인지 점심 때가 되지도 않은 오전 11시부터 주꾸미 가게에는 전날 거하게 한잔한 중년 남성들이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몸도 나른하고 매콤한 게 땡기는데 주꾸미 볶음 먹으러 가자. 어제 좀 진하게 한잔했는데 주꾸미 샤부샤부로 해장이나 하자. 쫄깃한 주꾸미 데침 한 접시에 간단하게 소주 한 잔 어때." 주꾸미 음식으로 숙취와 피로를 한방에 날리고자 하는 소시민들의 찰나의 느낌이다. 이런 얘기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오랜 책장을 넘기듯 노포(老鋪·오래된 가게)의 흔적까지 볼 수 있는 곳이 인천에 있다.

 말로만 ‘원조’가 아닌, 왠지 붙이면 맛이 있을 것 같은 ‘할머니집’이 아닌 정말 ‘원조 맛집’이다. 한 번 갔다 온 사람들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우순임 원조 할머니 쭈꾸미 가게’가 이번 노포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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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순임 할머니 쭈꾸미’ 식당 전경.
 우순임 원조 할머니 쭈꾸미 가게 창업주인 우순임(85)할머니도 여느 사람들처럼 한마디 거든다.

 "간판에 50년 전통이라고 했는데 더 오래됐어. ‘노인네가 평생 주꾸미만 팔고 살았나’하는 소리를 들을까 봐 살짝 깎았어. 내가 지금까지 가게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음식으로 나오는 모든 것을 직접 내 손으로 다 하기 때문이야. 지금은 늙어서 예전만큼 못하지만 그래도 고추장은 내가 직접 해야 속이 편해."

 자신의 음식에 자부심이 강한 우순임 할머니는 매일 손님들이 닥치기 전 가게 앞마당에 주꾸미가 담겨 있는 빨간색 대형 고무 대야들과 씨름을 한다. 대야에는 살아있는 주꾸미들이 꿈틀대면서 마치 할머니와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 원조 우순임 할머니 쭈꾸미 가게의 탄생

 "이 가게를 하면서 아들 둘에 딸 둘, 4남매를 키웠어. 전쟁이 터지고 멋모르고 부모 손을 잡고 남한으로 피난 와서 먹고살려고 한 장사가 주꾸미야. 이놈들이 나하고 자식들을 이렇게 먹고살게 해 줬어."

 창업주인 우순임 할머니의 고향은 북한 황해도 연백이다. 한국전쟁 때 친정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과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2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처음에는 전라도 고흥에서 살다가 혼자 인천으로 오게 됐다.

 인천에서 할머니는 이 일 저 일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하다 포장마차를 시작했고, 여기서 주꾸미와 인연을 맺었다. 그런 후 1968년 목재공장들이 많았던 만석동 고가 아래에 가게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살짝 데친 주꾸미를 초장과 함께 술안주로 만들어 팔았다. 그러다 무교동 낙지볶음에서 힌트를 얻어 직접 만든 양념과 주꾸미를 버무려 볶아 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주 메뉴인 ‘주꾸미 볶음’이다.

 현재는 아들 김홍명 사장과 며느리, 딸 등 가족이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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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대표 메뉴인 주꾸미 볶음.
# 우순임 할머니 쭈꾸미 가게의 대표 ‘주꾸미 볶음’

 4월 첫째 주 어느 날. 지인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겸해 취재 부탁을 하러 가게를 찾았다. 오전 11시 30분께인데도 가게 안은 한두 테이블 빼고는 손님들로 차 있었다. 얼른 자리를 찾아 앉은 후 메뉴판도 볼 필요없이 주꾸미 볶음을 시켰다. 가게 안은 주꾸미 볶음을 먹는 사람, 주걱으로 주꾸미를 뒤집으면서 주꾸미가 익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시끄러웠다.

 잠시 후 둥근 탕용 냄비에 빨간 양념과 양파, 콩나물 등과 함께 버무려진 주꾸미와 그 위에 미나리 한 움큼이 얹혀져 군침이 절로 돌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주꾸미 볶음이 나왔다. 테이블 가운데 있는 가스 불에 냄비를 올린 후 약한 불로 굽기 시작했다. 강한 불로 하면 자칫 양념이 탈 수 있어 서서히 구워야 한다.

 계속 저어 가면서 굽기를 5~10분이면 주꾸미에서 살짝 하얀 빛깔이 난다. 그때부터 앞접시에 주꾸미와 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무침이나 무채무침을 곁들여 먹으면 입 안에서 절로 탄성이 나온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냄비 안에 있는 빨간 주꾸미와 콩나물을 같이 먹으면 주꾸미 볶음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주꾸미를 어느 정도 먹고 나면 꼭 주문해야 할 코스가 있다. 바로 볶음밥이다. 식사량에 맞게 볶음밥을 주문하면 가게에서 일하는 손자가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윤기가 잘잘 흐르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볶음밥을 만들어 준다. 주꾸미 볶음의 마지막 코스 볶음밥을 먹어야 비로소 할머니 주꾸미 볶음을 정복했다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주꾸미 볶음뿐 아니라 주꾸미 데침, 주꾸미 샤부샤부, 가오리 무침, 가오리 매운탕, 소라 등 메뉴도 다양하다. 특히 모든 메뉴들 옆에 적힌 ‘국내산’이라는 글귀는 손님들의 발길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우순임 할머니는 이들 수산물을 소래포구와 연안부두에서 직접 가져온다. 최근에는 북성포구에서도 주꾸미들을 가져온다고 했다.

# 우순임 할머니의 주꾸미 음식 비법

 흔히 맛집에 가면 그들만의 비법이 있다. 대부분 그 비법을 잘 알려 주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우순임 할머니는 자신의 비법을 거리낌 없이 공개한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어렵지 않다. 할머니의 비법은 바로 ‘정직’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손님을 속이면 그때부터 장사를 접어야 해. 그래서 나는 모든 음식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지. 그래야 손님들이 믿고 내 음식을 맛나게 먹어 주는 것이야."

 비법이 ‘정직’이라는 할머니는 고추장을 만들 때도 직접 빨간 고추를 재배 또는 산지에서 사 와 말리고, 갈아서 손수 만든다. 된장도 그렇다. 지금도 다른 것은 몰라도 고추장과 된장은 직접 만든다. 또 양파·대파·콩나물 등 채소들도 할머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되돌려 보낼 정도로 꼼꼼하게 체크한다.

 그렇다 보니 그 맛의 깊이나 향이 남달라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경기 등 전국의 사람들이 이 가게를 직접 찾아오거나 인천에 오면 꼭 한 번씩 찾아 가장 한국적인 맛에 푹 빠져 보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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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 사장이 식당 앞에서 주꾸미를 건져 올리며 활짝 웃고 있다.
# 우순임 할머니의 바람은 ‘가업’

 "딸이고 아들이고 4남매 다같이 벌어 먹으라고 해야지. 아들만 하나 줄 수가 없잖아. 딸들도 자식, 아들도 자식, 손주도 자식이잖아. 그래서 이 가게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어."

 우순임 할머니의 작은 바람은 자신이 일군 이 가게가 자신이 없어도 자식들이 정직하게 오랜 기간 꾸려 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들딸, 며느리, 손자 할 것 없이 원하는 사람은 다 이 가게에서 일하도록 한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와 함께 딸과 아들, 며느리, 손자 등 3대가 함께 도와 장사를 하고 있다. 3대에 걸쳐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데는 할머니의 진심 어린 질책이 있다.

 "며느리도 잘하고, 나 하는 걸 보고 따라와 주는 딸도 잘해. 근데 부족하면 당연히 야단 치지. 음식은 항상 손님을 생각하면서 정성을 담아 푸짐하게 주고 아까워서 덜덜 떨면 안 돼. 장사가 잘 된다고 손님들을 절대 속여서도 안 돼." 할머니는 지금도 손님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주방에서 일일이 자식들에게 따끔한 질책과 비법을 전수하느라 분주하다.

 우순임 원조 할머니 쭈꾸미 가게가 있는 동구 만석동은 인천의 대표적인 서민들의 보금자리다. 여기서 60여 년 동안 구수한 손맛 하나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 노포를 취재하면서 할머니의 해맑은 미소 속에 진정한 음식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주꾸미의 풍미로 그 맛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의 손자·손녀들에게까지 맛깔나는 오랜 맛집, 노포로 기억되길 고객으로서 바람을 전한다.

 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자료=인천도시역사관 제공>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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