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활동이요? 그냥 재밌어요!"

 바쁜 학업 속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던 유빈(18)군의 말이다.

 유 군은 동아리 활동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재미’를 꼽았다. 유 군이 몸담고 있는 동아리는 2003년 3월 특기·적성교육활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창단돼 17년째 운영 중인 파주 율곡고등학교의 ‘새김소리’로, 경기도내 유일한 서각예술 학교동아리다.

 서각(書刻)이란 글씨나 그림을 나무 또는 기타 재료에 새기는 것으로, 서각예술은 시와 글 또는 그림에 조각적·공예적·서예적·회화적 요소들을 담아내면서 물체의 표면에 그리고, 새기고, 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출하는 전통 종합예술이다.

 국내 대표적 서각작품으로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등이 있으며, 궁과 사찰 등지의 현판들도 서각작품에 포함된다.

 이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서각예술을 학교동아리 활동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있는 ‘새김소리’를 만나기 위해 찾은 교정에서는 ‘뚝딱뚝딱’ 나무를 조각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리를 따라 학교 뒤편으로 발길을 옮기자 나무에 웃음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의 ‘소목서각실(笑木書刻室)’이라는 현판이 걸린 동아리 작업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가 주는 특유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업실 안에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박병헌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각자의 나무판에 글과 그림 등을 새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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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김소리에서 작품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
# 지금까지 이런 동아리는 없었다! ‘낯섦’이란 매력

 새김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율곡고 학생들은 직접 농산어촌 방과후학교와 연계해 개인의 학습능력과 독창성·창의력으로 맞춤형 지도를 하는 등 소외된 지역의 학생들에게 새로운 영역의 배움을 위한 노력을 펼쳐 ‘경기도교육청 특기·적성교육활동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선정됐었다.

 또 2011년에는 ‘방과후학교 개별화’, 2012년 ‘농어촌 방과후학교’, 2013년 창의적 체험활동 ‘너나들이 공동체 프로젝트’에도 선정된 바 있다.

 해마다 ▶술이홀 樂(락) 새김전 ▶율곡문화제 ▶달달한 희망 빛 축제 등 행사에 참여해 서각예술의 대중화와 파주시 예술문화 발전에도 기여했다.

 특히 교내 축제인 ‘율곡한마당’에서는 서각전시회와 함께 다양한 체험부스에서 서각소품 만들기와 향초 만들기를 운영, 판매수익금으로 ‘새김장학금’을 만드는 등 재능기부활동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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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고 본관
 새김소리에서 활동 중인 학생들은 이 동아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입을 모아 ‘생소함’을 꼽았다.

 현재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유빈 군도 마찬가지였다. 동아리 부원 21명의 90% 이상이 미술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매년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3년째 미술을 전공하지 않는 특별함을 지닌 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유 군이다.

 유 군은 "학교에 입학한 이후 활동하고 싶은 동아리를 찾던 중 30여 개가 넘는 동아리 중에서도 유독 새김소리가 눈에 띄었다"며 "댄스부 등 뻔한 활동을 하는 타 동아리와 달리 서각이라는 생소한 장르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는 신서연(17)양도 "처음에는 향후 진로를 생각해 미술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서각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새김소리에 가입했다"며 "막상 동아리 활동을 시작해 보니 중학교 3년 내내 그려 왔던 그림과 서각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너무 많았고, 나무를 깎는 일이다 보니 힘도 많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올해 입학해 지금까지 2차례의 동아리 활동을 경험한 김도윤(16)군 역시 서각예술의 ‘낯섦’이 동아리 선택 이유였다.

 김 군은 "서각이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이지 않나"라며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미술 분야라는 공통점과 이전에 접해 보지 못했던 분야라는 점에 이끌려 새김소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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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김소리에서 작품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
# 힘든 학업 속 오아시스, 동아리

 학업 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할애해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학교동아리를 통해 보다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교과서만으로는 알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격투기 선수 또는 부사관을 꿈꾸고 있는 유 군은 "대부분 미대 진학을 희망하는 부원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한계를 느낀 적이 많아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고 싶은 때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일단 시작을 했으니 조금 더 서각예술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에 선생님과 다른 부원들의 도움 속에 꾸준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아리 활동을 이어오는 시간 속에서 실력도 점차 늘고,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능력과 집중력도 기를 수 있었다"며 "특히 오랜 시간을 들인 끝에 완성된 작품을 보며 느끼는 희열과 뿌듯함은 새김소리 부원만이 알 수 있는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신 양은 "새김소리는 동아리 특성상 다른 동아리에 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점이 부담이었다"면서도 "나무 냄새를 비롯해 동아리실에 걸려 있는 선생님과 선배들의 작품이 너무 좋아 계속 활동하게 됐는데, 작품을 만드는 과정의 하나인 채색 역시 미술의 일종이다 보니 전공인 동양화를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 입시활동에도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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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외 전시회
 또 "무엇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며 "때로는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은 물론 밤 늦게까지 작업실에 남아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힘겨울 때도 있지만, 나무를 깎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데다 작품을 완성한 뒤 느끼는 자부심과 보람은 다른 활동을 하는 데 용기마저 준다"고 얘기했다.

 이들은 직접 작품의 주제부터 형태를 구상한 뒤 작품을 만드는 것 외에도 완성된 작품을 토대로 한 전시회와 학교 축제 등 다양한 행사를 부원들끼리 의견을 모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자립심과 계획성, 실행 능력까지 키울 수 있는 점을 동아리 활동의 장점으로 소개했다.

 유 군은 "우연히 시작하게 된 동아리 활동을 통해 평생을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를 갖게 됐다"며 웃음을 보였다.

# 학교 동아리에 대한 바람

 이처럼 다양한 장점을 지닌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마음껏 동아리 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현행 대입제도 속에서는 아무리 좋은 활동이더라도 학업을 무시한 채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대표적 사례로 ‘학생부종합전형’에 따라 동아리 활동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대학입시를 위해 억지로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원하는 동아리 활동을 포기한 채 대입에 유리한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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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모습.
 신 양은 "학창시절 동아리 활동은 순수하게 자신의 관심사를 경험하거나 여가 또는 취미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데, 대입제도 때문에 동아리 활동이 변질되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순수한 이유를 갖고 온전히 동아리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군도 "동아리 활동은 같은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개설해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동아리 활동 시간도 특정 요일, 특정 시간에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새김소리를 지도하고 있는 박병헌 교사는 "학생들에게 동아리 활동은 잠재적 성장을 위한 중요한 교육활동"이라며 "다만, 동아리 운영 예산의 집행이 일률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동아리 특성에 따라 예산집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표 기자 sp4356@kihoilbo.co.kr

사진=율곡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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