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영화 ‘남한산성’은 주화를 편들지도, 척화를 편들지도 않는다. 다만, 지도층의 치열한 논쟁과 민초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연민을 배제한 시각으로 돌아볼 뿐이다.

 영화 ‘남한산성’의 원작자 김훈은 370년 전의 치욕을 왜 21세기인 지금 다시 꺼낸 것일까? 작가는 무엇보다 ‘치욕을 기억하라(memento infamia)’고 말한다. 또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도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더럽혀지는 인간들이 아름답다’고 한다.

 역사가 삶과 죽음의 기록이라고 할 때 치욕의 역사는 살아낸 삶의 이력이다. 이 치욕이 단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미래형이 될 수 있음을 작가 김훈은 에둘러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 남한산성은 홍이포 때문에 무너졌는가?

 영화는 과장됐다.

 홍이포는 네덜란드 군대가 사용하던 대형 대포다. 명군이 입수해서 사용하다가 청군에게도 전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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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스틸이미지.
 조선군은 청군이 대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큰 위협 요인은 됐다. 영화에서 홍이포가 발포할 때 포신이 뒤로 밀려났다가 앞으로 (반동을 흡수해)자동으로 되돌아오는데, 이는 200년 뒤에야 보급되는 기술이다.

 홍이포로 성벽이 일부 무너진 것은 사실이지만 가마니에 흙을 담아 쌓고 물을 끼얹어 얼음 성벽을 만들어 재빨리 보수했다.

 실제 역사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그럼 왜 항복했는가? 강화성 함락이었다. 강화성에 가 있던 왕세자가 볼모가 돼 송파 삼전도에 무릎 꿇고 있다는 소식이 1월 26일 산성에 전해지니 전의를 상실하고 1월 30일 항복하기에 이른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강화성 함락의 원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처절한 비극으로 몰고 간 느낌이다.

 실제 포격술은 청나라군보다 조선군이 훨씬 우수하고, 포격전에서도 조선군이 응전했는데 청군 진영 안에 바로 명중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종전 후 청나라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조선 포수를 여러 번 요청하기도 한 기록이 있다.

# 인조가 삼배구고두례를 행할 때 정말 이마에서 피가 나지 않았는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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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남한산성’에서 김상헌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실록에는 용골대와 최명길이 나와서 사전 협의를 했다(곤룡포를 입어도 되느냐-안 된다/ 나올 때는 어느 쪽 문으로 나가느냐-서문으로 나와라/ 결박도 해야 하느냐-상관없다/ 호위병 붙여도 되는가―청군이 에스코트할 것이다 등). 영화에서는 사전 브리핑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없었으나 삼배구고두례를 위한 사전 협의는 잘 묘사했다.

 영화에서 송파 삼전도에 갈 때 남색 옷을 입었다. 실록에 명시돼 있다.

 삼배구고두례는 삼궤구고두례라고도 한다. 실록에는 둘 다 명시돼 있다. 삼배구고두례의 ‘삼배’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이다. 그동안 드라마에서는 인조가 머리를 찧으면서 피가 났다는 식으로 묘사했으나 이것은 허구다. 본래 삼배구고두례는 항복 의식이 아니라 신하가 청의 황제를 만났을 때 하는 일반적인 의식이다.

# 김상헌은 삼전도에 가지 않고 자결했는가?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김상헌은 "나는 분명히 항복하지 말자고 간언했는데 전하께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이 꼴을 볼 수 없다"고 하며 샛길로 내려와 귀가했다. 이후 목을 매달고자 했는데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자결에 실패했다.

 김상헌은 전쟁 이후 고초를 겪기는 했으나 천수를 누렸다. 복부를 칼로 찌른 이는 이조참판으로 있었던 정온이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당시 67세, 최명길은 50세로 영화에서 더 젊게 나온 분장도 세밀한 관찰 부족이었다.

# 최명길과 김상헌은 끝까지 대립만 했는가?

 자존을 위해서 죽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냐 아니면 일단 직면해 있는 일은 피하고 후일을 도모할 것이냐. 이 두 가지 길에서 인조는 고민하고 대신들은 치열하게 대립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심심찮게 김상헌과 최명길이 대립하는 대화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록을 보면 최명길이 쓴 항복 문서를 김상헌이 찢어 버리자 최명길이 다시 주워 모았다. 그러면서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 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처럼 주워 모으는 자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장면이 영화에 들어갔으면 아마도 명장면으로 남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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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
 다른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실제로 널리 알려진 기록은 왜 쓰지 않았을까? 그것도 아마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 갈등으로 몰고 가려는 작가의 철저한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상의 몇 장면을 통해 영화 ‘남한산성’이 역사소설에 바탕을 둔 영화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역사 속의 남한산성과 차이점을 파악해 그에 대한 허와 실을 살펴봤다. 영화의 재미와 병자호란, 남한산성의 올바른 역사인식,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의미도 함께 올바로 살피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진욱 기자 panic82@kihoilbo.co.kr

<도움말=전보삼 만해기념관장(철학박사·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 명예회장)>

※본 내용은 전보삼 만해기념관장이 ‘광주문화’에 수록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일반 학계의 주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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