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한때 40여 개가 넘는 책방으로 북적였다. 지금은 5곳만 남았다. 최근 마을 경관이 깔끔하게 개선되고 외부인이 유입되자 임대료 상승 등으로 임차인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이 생겼다.
마을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한 청년의 표정은 어두웠다. 배다리 외관 파사드 경관개선사업으로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 달라고 해서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임대료를 일정 비율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으나 건물주 입장에선 계약 종료 후 새로운 세입자를 찾으면 그만이다. 개업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가게를 정리해야 할지 몰라 그는 불안하다.
배다리마을 경관개선사업은 시가 추진 중인 개항창조도시의 25개 마중물 사업 중 하나다. 2018년 4월 시작돼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세무서 도로변까지 약 1.5㎞ 구간의 낡은 건물 경관을 개선하고 있다.
하지만 둥지 내몰림 방지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사업이 시작됐다는 것이 문제다.
동구가 사업 참여 여부부터 디자인 설계와 공사 진행 등 모든 과정을 건물주하고만 의논했을 뿐 임차인 등과는 논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배다리마을의 둥지 내몰림은 더욱 심할 것이라고 이곳 상인들은 말한다.
부동산 중개업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년 동안 배다리마을의 89㎡ 상가 기준 매매가격은 3.3㎡당 50만 원까지 올랐다"며 "최근 동네가 깔끔해지니 외부 사업주들이 관심을 많이 보여 개선사업이 끝나면 더 올라갈 것 같다"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는 뒤늦게 둥지 내몰림 방지 조례를 6월 정례회에 상정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조례가 제정된다 해도 강제성을 띨 수 있는 내용은 없어 둥지 내몰림 현상을 막기에는 힘들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월 둥지 내몰림을 막기 위해 13개 시도에 ‘상생협력상가 조성 및 운영 방안’을 전달했지만 배다리마을은 이마저도 해당되지 않는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곳에서도 적극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인들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다.
한 상인은 "건물주와 분쟁을 벌이다가 계약이 파기라도 될까 두려워 임차인들은 목소리를 내기 더더욱 힘들다"며 "건물주가 월세를 안 올리는 대신 임차인 부담으로 건물 보수를 약속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글·사진=김유리 인턴기자 kyr@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키워드
#배다리마을
김유리 인턴기자
kyr@kiho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