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문학의 걸작인 「시턴동물기」를 쓴 시턴은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화가다. 1878년 영국 런던으로 유학간 시턴이 열아홉 살 때의 일이다. 브리튼 박물관에 전세계에서 발행된 귀중한 박물학 관계 서적이 많이 있다는 말을 들은 시턴은 곧 박물관으로 가서 열람권을 청구했다. 그러나 도서계원은 그가 아직 열아홉 살이라는 이유로 열람권을 주지 않으며, 스물한 살 이상이 돼야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턴은 항의하며 "박물관을 공부하려고 하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못 들어가게 한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도서계원은 그렇다면 관장에게 가서 청을 해 보라고 권하며, "관장님이 허락하신다면 예외로 취급할 수도 있네"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시턴은 관장실 문을 두드렸다. "미성년자들이 박물관 안에서 소설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는 바람에 정작 연구할 사람들이 못하는 일이 많아 그런 규칙이 생긴 걸세, 학생처럼 박물관에 열의가 있는 사람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규칙을 어길 수는 없네."

 시턴은 "이 박물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말하자면 카이사르 같은 사람이 누굽니까?"

 관장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곧 웃으며서 대답하길 "황태자, 대승정, 총리대신 같은 평의원이라며, 만일 그분들의 지시가 있으면 따르겠네."

 그날 밤 시턴은 하숙집에서 밤늦게까지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다. "저는 열아홉 살의 유학생으로 박물학자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박물학 관계 서적을 많이 봐야 하는데, 아직 미성년이라서 브리튼박물관 도서 열람 자격이 없다. 부디 특별히 배려하시어 박물관에서 연구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세 통 써서 부치며, 그 중 한 사람만 답장을 해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세 사람 모두에게서 청을 들어주겠다는 회답이 왔다. 그 회답을 갖고 박물관에 가니, 관장이 어깨를 두드리며, "열심히 연구해서 훌륭한 박물학자가 되기를 바라네"라며 격려했다. 보통사람들은 위기를 만나면 중도에 포기하고 말지만 시턴처럼 성공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끝없는 노력을 한다. 우리 속담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참고 또 참으며 노력하다 보면 앞을 가로막는 문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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