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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도시재생이 화두다. 지난주에는 그동안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도시재생사업 성과를 한곳에 모은 ‘2019 도시재생 산업박람회’가 열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인천항 8부두에 위치한 상상플랫폼(옛 곡물창고)에서 개최된 이 행사에 참여한 네덜란드 건축가 뤼르트 히테마는 강연을 통해 "지역에 내재해 있는 자산을 바탕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할 때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이 말이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그동안 진행된 도시개발사업이 지역특성을 간과한 채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도시재생 사업이 도시개발 사업의 또 다른 얼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면밀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해 온 주민들의 삶의 가치와 문화적 생태계를 현대생활로 이끄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마땅하다.

 수도권 관문항구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천항 주변에는 항만을 배경으로 다양한 산업이 발전했다. 그 중에서도 선박으로 운반되는 화물을 취급하던 물류업과 하역업, 운송업과 창고업, 선박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파는 선구 판매업은 항구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산업으로 인천항 1부두 근처는 운송회사와 물류창고 등이 밀집해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일대에 위치했던 많은 근대건축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닛센(日鮮)빌딩은 선광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나 지역의 중요한 문화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건물 말고도 중구 제물량로 203-1, 201-1, 201에 각각 현존하는 이케마쯔(池末)상점, 쿄도(協同)해운회사, 야마구찌(山口)운송회사 또한 항만을 배경으로 세워졌던 회사 건물로 당시의 건축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우정일식으로 널리 알려진 이케마쯔상점은 전형적인 일본 건축양식 외관을 갖춘 건물로 1932년께 세워져 해방 무렵까지 선구점, 질소 카바이트 판매점으로 쓰였다. 해방 후에는 조선미곡창고 인천지점 사무실이, 얼마 전까지는 일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그간 두 차례 화재로 지붕틀 일부는 철재로 대체되기도 했으나 외관은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이다.

 이케마쯔상점 바로 옆 건물은 수륙 운송업과 선박 대리점업을 수행하던 쿄도해운회사가, 그 옆 건물에는 야마구찌운송점이 입점해 있었다. 이들 세 채의 건물은 1932년께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항공 사진을 필두로 여러 사진자료에 등장한다.

 접근성이 낮아 외지인의 방문이 거의 없던 이곳에 최근 들어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인천광역시건축사회가 회관으로 쓰기 위해 이케마쯔상점 건물을 매입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이 건물을 건축사회관의 목적과 기능에 맞게 재구성하는 계획안을 놓고 학생공모전을 실시했으며, 지금은 리모델링 건축설계 및 시공 용역 공모를 추진하고 있다. 자칫 허물어질 수도 있었던 건축자산을 활용해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있는 인천광역시건축사회의 용단에 박수를 보낸다.

 최근의 근대건축물 활용 방법은 건축물 단위(점적)를 넘어 블록단위(면적)로 바뀌고 있지만, 인천 개항장 일대에서 근대 건축물이 군락을 이뤄 남아 있는 곳은 몇 군데 없다. 더구나 이곳은 향후 개방될 1부두와의 관련성은 물론 인천중동우체국, 인천문화재단과 같은 블록에 위치하고 있어 문화거점으로의 활용 가능성도 높은 장소다.

 인천시는 근대건축물 철거를 막지 못했다는 비난도 받지만, 수인선 신포역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천세관 창고를 이전 복원해 등록문화재로 만든 경험이 있다.

 이제는 인천시가 나설 차례다. 옛 쿄도해운회사와 야마구찌운송회사 건물을 매입해 개항장과 내항을 연결하는 매개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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