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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을 이끄는 대표이자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은 전통적으로 우리네 아버지들이 맡아 왔다. 어머니가 안사람으로 집안 살림을 보살폈다면 아버지는 바깥사람답게 직장에 터를 잡고 회사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짊어져 왔다. 아버지의 시간은 집안보다는 주로 사회생활에 할애되다 보니 어느새 가족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되며 이내 불편해지게 된다. 게다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야 하는 아버지들은 피곤하다. 때문에 집에 오면 쉬고 싶다. 그러나 보니 자연히 가족과 대화가 적어지고 이해와 공감의 영역도 줄어들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비슷하리라.

 영화 ‘라스트 미션’에서 가장 ‘얼’도 이와 유사한 삶을 살았다. 그에게는 직장이 전부였다.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던 그는 늘그막에 가족과 완전히 멀어진다.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아버지의 여정을 그린 영화 ‘라스트 미션’을 만나 보자.

 원예사로 일해 온 얼은 주목받는 삶을 살았다. 꽃 경연대회에서도 대상을 놓치지 않았던 그의 삶에서 가족은 늘 뒷전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가족들은 이해해 줄 거라고 그는 믿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가장의 뒷모습만 바라본 가족들은 어느새 아버지 없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기대하지 않은 순간, 얼은 나이가 들어 있었고 원예사업마저 파산하게 된다.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선뜻 자신을 반길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주변과 화해하기 위해 얼은 돈이 필요했다. 손녀의 등록금과 결혼식을 위해, 자신의 전부였던 농장의 압류딱지를 떼기 위해, 오랜 단골이었던 참전용사 가게를 되살리기 위해 그는 돈이 필요했다. 여든의 얼은 우연히 제안받은 배달 일을 통해 큰 수익을 얻었고, 모든 수입은 지나간 아쉬움을 되돌리는 데 사용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약 운반책이 돼 불법적인 일에 관여하게 된다. 가족관계를 돌리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잘못된 선택. 식구들과 화해를 바라는 그의 마지막 바람은 이뤄질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1년에 걸쳐 마약 운반상으로 활동한 레오 샤프라는 고령의 남성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영감을 주는 소재로만 활용됐을 뿐 영화는 많은 부분이 창작됐다.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배우이자 감독을 동시에 겸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존재에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인 그는 여든여덟의 나이에 이 작품을 연기했다.

 서부극 ‘황야의 무법자’에서 강렬한 눈빛과 남성적인 매력으로 슈퍼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60여 년간 영화계에 몸담으며 대중을 실망시키지 않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기억되는 배우다. 연출력도 출중해 2004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과 세월의 흔적처럼 굽은 허리로 스스로 영화가 된 노장 배우는 ‘라스트 미션’을 통해 비록 돈으로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진실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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