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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자 인천문인협회 회원
또 외출을 한다. 어제도 그랬고 사흘 전에도 그랬다. 낡은 소파 때문이다. 10년 전 이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들여놓은 소파이니 나이로 따지면 열한 살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반짝 반짝 윤이 돌아 거실을 빛내주던 소파가 나처럼 노파가 되어 집안 분위기가 우중충하다. ‘질기기는 쇠가죽 같다’는 말이 있지만 소가죽도 낡으려니 순식간이다. 위태롭던 솔기의 재봉실이 터져 허연 속살(캐시밀론 솜)이 보인다. 개비해야지 해야지 했는데 뭔 일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엊그제 고장 난 샤워기를 손보러 온 관리소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소파가 돈 달라 하네요."

 그 말에 부끄러움이 귓불에 닿는다. 다음 날 서둘러 멀지않은 종합 가구점에 다녀왔다. 색상과 모양, 재질, 무엇보다 그 중 중요한 가격을 보고 돌아왔다. 그 다음 날은 길을 물어 소파 천갈이 하는 공장에 발걸음을 했다. 허름한 매장엔 소파 서너 개가 진열돼 있고 한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주인 아주머니가 손님을 맞는다. 천갈이를 물으니 장방형의 가죽 샘플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설명을 한다. 50개가 넘는 샘플은 색상과 재질이 가구점과 같았고 비용도 새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이럴 때 딸아이를 부른다. 딸 다섯을 둔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버스로 열 정거장쯤, 차로 20분 거리가 출가한 자식과의 가장 이상적인 거리라고 한다. 그 이상적이라는 마을에 사는 딸아이가 전화를 받고 금방 달려왔다.

 나이 일흔을 넘으니 딸아이는 어미를 사뭇 어린애 취급을 한다. 예컨대 블라우스를 사러 쇼핑센터에 가면 옷 주인인 나보다 딸아이의 눈빛이 반짝인다. 모양과 색상과 가격, 재질, 바느질을 꼼꼼히 살핀다. 저 아이가 어렸을 때 딸아이 옷을 고르던 내 모습 그대로다. 딸 나름으로 좀 더 밝고 세련되게,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게 하려는 마음이 예뻐서 "네가 고른 것이니 어련하겠니?"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그 옷을 입는다. 그런데 이번엔 백만 원이 넘는 소파를 골라야 한다. 집안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가구. 더구나 가족이 10년을 편하게 앉아야 하는 기능성 가구다. 친정집 오래된 소파를 보며 이 날을 기다린 듯 딸아이는 휴대전화를 꺼내 ‘표정 있는 가구’를 클릭한다.

 인천의 외곽, 남동산단 끝자락에 자리한 외진 곳을 방문한 손님들은 우리뿐이 아니다. 소파, 장롱, 식탁 등 코너마다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이 여럿 서성거린다. 우리는 다크브라운 색상의 소파를 골랐다. 딸아이와 나는 서너 개의 비슷한 소파를 놓고 꼼꼼히 살펴본 후 첫 번째 진열된 소파에 점을 찍었다. 너무 어둡지 않을까. 요즘 그레이 색상이 유행이라는데…. 집에 돌아오니 자꾸 그레이 색상의 중후한 소파가 눈에 어른거린다. ‘이놈의 결정 장애, 햄릿 증후군!’ 이마에 꿀밤을 먹인다. 나이 들면서 허리며 무릎, 시력에 조금씩 장애가 오듯 물건을 구입하면서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장애가 온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남편 옷이며 가전제품은 물론 작은 찻잔까지 딸아이에게 의존하는 형편이다. 다음 날 소파를 설치하고서야 오락가락하던 조바심이 끝을 냈다. 우리 거실에 맞춘 듯 색상과 디자인이 안성맞춤이다.

 우리 생전에 다시 개비하지 못 할지도 모를 소파다. 매니저의 말로는 소가죽으로 만든 것이라 했다. 소의 심성만큼 부드러운 소가죽 소파에 앉으니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요즘은 소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제격이다. 호피(虎皮)와 우피(牛皮), 누군가 이들 중 ‘어느 것을 주랴’ 묻는다면 나는 일초도 생각하지 않고 우피라 할 것이다. 호피는 112㎡ 우리 집에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친지의 집을 방문했을 때 호랑이 그림이 든 족자를 보고 흠칫 놀랐던 기억이 있어서다. 그 호전적인 눈빛이 얼마나 섬뜩하던지. 어느 시골집 외양간의 눈매가 어질고 순한 황소가 벗어놓고 간 한 벌의 겉옷. 소는 죽어 가죽을 남겼다.

▶작가 : 2014년 제25회 인천시민문예대전 수필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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