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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는 그 의미가 매우 각별하다. 왜냐하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단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할 때 자신의 목적을 좀 더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치적 목적은 정당을 통해서, 경제적 목적은 회사를 통해서, 사회·문화적 목적은 사회·문화단체를 통해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은 노동조합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길드(Guild), 회사, 협동조합, 노동조합, 대학, 교회, 정당 등 다양한 결사체 형성을 통해 사회 발전을 이뤄왔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예로부터 두레, 품앗이, 계(契)와 향약(鄕約)을 통해 상부상조의 미덕을 이어왔고 조선시대에 보부상단(褓負商團)이 상거래 활동을 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 밖에 자발적으로 단체를 만들어 지속적 활동을 한 사례는 별로 없다. 특히 일제강점기하에서는 거의 모든 단체활동에 대해 주민통제를 시행했고, 해방 이후에도 독재정부에서는 국민의 단체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 단속했다. 그래서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은 모두 비밀스러운 결사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까지도 결사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지속됐다. 노동자들은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노동조합을 만들 권리)’조차 부정당하면서 노조 결성과 운영은 사용자와 정부에 의해 끈질기게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는 법원행정처가 ‘우리법연구회’라는 법관들의 학술모임 활동까지도 감시하고 통제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단체의 결성과 활동’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며 이를 제약하는 못된 인식과 행태가 오래도록 지배했다.

 법 제도상의 문제점도 있다. 우리 민법 제32조는 비영리법인의 설립에 관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단체 설립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이라는 비판이 오래도록 제기돼 왔다. 언론·출판에 대한 사전검열과 집회에 대한 허가제가 위헌이듯이 법인 설립에 대한 허가제도 마찬가지로 위헌이라는 주장, 영리법인의 설립에 대해 상법이 ‘준칙주의’를 취하는 것을 고려하면 비영리법인의 설립에 대해 민법이 ‘허가주의’를 취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아 ‘평등권의 침해’로 위헌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선진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허가주의’를 취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지난 19대 국회에 제출됐던 민법개정안에서는 설립 행위가 법률에 정한 요건을 갖추면 주무관청은 이를 인가해야 하는 ‘인가주의’로의 전환이 제안됐었다. 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 진행된 민법 개정 작업에서도 같은 입장에서 논의가 전개된 바 있고, 일부에서는 ‘준칙주의’로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그런데, 아직도 개정되지 않고 ‘허가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관청이 재량으로 법인 설립을 불허가할 수 있고, 법인 설립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국회는 시급히 민법 제32조를 개정해 비영리법인의 설립에 있어서 ‘허가주의’를 ‘인가주의’ 또는 ‘준칙주의’로 바꿔야 할 것이다.

 자유권은 본시 ‘국가로부터의 자유’이고, ‘권력에 대한 방어적·소극적 권리’이며, ‘초국가적 인간의 권리’이다. 영어로 ‘자유’를 의미하는 ‘freedom’이란 단어는 곧 ‘규제가 없는 것’ 즉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그냥 놔두는 것’을 의미한다.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꼭 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협동조합’을 모범적·선진적으로 운영하는 덴마크에는 협동조합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필요한 모든 사항을 자치규범(정관 등)으로 정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우리나라에는 협동조합법이 9개나 있지만(농협법, 수협법,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신용협동조합법,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엽연초생산협동조합법, 산림조합법, 새마을금고법, 협동조합기본법 등), 결사의 자유가 덴마크보다 넓게 보장된다고 말할 수 없다. 법이 많다는 것은 규제가 많다는 의미가 되므로 자유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축소’하는 부작용을 수반할 수도 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May Day)’을 보내며 ‘결사의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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