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마이 러브NK:붉은 청춘
80분 / 다큐멘터리 /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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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바이 마이 러브NK:붉은 청춘’은 한국전쟁 당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나 목숨을 내건 정치적 망명의 길에 올라야 했던 ‘모스크바 8진’의 광활한 여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로 유라시아 대륙에 뿔뿔이 흩어진 고려인들의 발자취를 지속적으로 담아 온 김소영 감독은 소련으로 망명한 ‘탈북 고려인’ 최국인 감독, 김종훈 촬영감독을 만나면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접하지 못 했던 북한 청년들의 이야기와 마주한다. 죽음을 결심한 망명의 길에 올랐던 청춘의 시기를 회고하는 최국인 감독, 김종훈 촬영감독, 그리고 작고한 한진의 미망인, 지나이다 여사의 회고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잊혀진 기억을 생생한 영상으로 불러오는 독보적인 연출력과 미학적 아름다움이 집대성된 영화로도 주목받고 있다.

 방대한 시간을 아우르는 인터뷰 사이사이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영상과 사진들은 반세기를 건너 그들의 시간과 조우하게 만든다.

 또 빛 바랜 손글씨가 세월의 깊이감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일기와 서간에서는 격동의 역사를 헤쳐 온 이들의 마음에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들이 남긴 기록을 과장되지 않은 영상으로 재현해 낸 장면들은 자칫 흑백으로 남겨질 뻔한 오랜 역사를 그들만의 색으로 덧입혀 공감대를 자아낸다.

 여기에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나란히 장식한 소비에트 전역을 뒤흔들었던 고려인 출신의 전설적인 뮤지션 ‘빅토르 최’의 음악은 마치 청춘들이 되살아나 나지막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한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특히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굴곡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피워 낸 북한 청년들의 꿈과 사랑의 여정이다. 스탈린의 개인 숭배를 비판하는 ‘제20차 소련 공산당 대회 후르시초프 비밀연설’에 감명받아 목숨을 걸고 북한의 1인 독재를 비판했던 북한 청년 사회주의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을 전한다. 망명 이후에도 조국에 대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영화·희곡·연극 등 예술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간 이들의 행로는 차가운 시대를 뜨겁게 물들였던 청춘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눈의 마음: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에 이어 김 감독의 망명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 안산에서부터 시작해 중앙아시아, 러시아로 펼쳐진 김 감독의 카메라는 소련, 러시아, 동독 그리고 소련 붕괴 이전의 북한으로까지 이어진다. 카자흐스탄, 시베리아, 무르만스크 등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유랑의 운명 속에서도 새로운 꽃을 피웠던 청춘들의 아름다운 길을 담아낸 이 영화는 중앙아시아의 다층적인 결을 촘촘한 영화적 구성으로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사람이 태어난 곳은 고향이라는데 사람이 묻히는 땅은 뭐라고 하느냐. 거기에도 이름이 있어야 할 거야. 고향이란 말에 못지않게 정다운 말이 있어야 할 거야’라는 메시지는 붉은 청춘의 길을 건너온 이들의 목소리가 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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