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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중한 아들에게 바치는 다짐

정경림 인천문인협회 이사/시인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5월 07일 화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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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림 인천문인협회 이사
오래 전 어느 봄날의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학교 급식 우유를 마신 후 급체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로 달려갔다. 양호실에 있어야 할 아들이 보이지 않아 당황해 하고 있는 나에게 교감 선생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가좌 성모병원으로 빨리 가보라고 하신다. 하지만 어떻게 가야할지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교무부장 선생님은 손수 병원에 태워다 주신다. 가좌 성모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담임선생님에게 다급하게 아들의 경과를 묻자 "저기~"하며 손으로 가리킨다. 내 아이가 119구급차에 실리고 있었다. 황급히 뛰어가 보니 입에는 산소호흡기가 꽂혀 있었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전혀 움직임이 없다. 상황이 위급해진 아들을 더 큰 병원으로 옮기려는 듯했다. 구급차에 올라타 눈을 감은 채 아들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동안 어딘가에 차가 멈춰 섰다. 가좌성모병원에서 함께 온 의사와 간호사가 길병원 의료진에게 인수인계하는 소리가 무의식중에도 들렸다. "우리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사망한 듯싶습니다."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내 존재가 하얀 재로 사라지는 듯 시야가 막막했다. 응급실 집중 치료실에서는 전기충격까지 가하며 혼신의 노력을 했지만 아들의 심장은 미동조차 않고 모니터의 심박동 그래프도 반응이 없다. 아들의 담임선생님, 보건교사, 남편과 함께 마음을 졸이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때 대기실로 나온 의사 선생님은 "이 아이 말고 또 다른 아이가 있나요?" 하며 포기하라는 듯 말을 돌려 질문을 한다. "아, 사랑하는 내 아들, 소중한 내 아들은 이제 현대 의학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는 모양이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실성한 사람마냥 대성통곡을 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내 아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낼 수 없었기에 담당의사와 의료진을 찾아 다니며 붙잡고 울부짖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엄마의 애절한 기도 덕분일까? 미동조차 없었던 아들은 갑자기 검붉은 피를 계속 토해냈고 의료진은 아들을 중환자실로 급히 옮겼다. 하지만 중환자실은 기계 장치를 가동해 잠시 생명을 연장시키는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늘한 한기가 숨골을 훑고 지나가며 오돌토돌 소름이 돋았다. 북받쳤던 나의 감정도 평정의 순간을 거쳐 얼음장처럼 냉정해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외에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해야 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나약해진 심신으로 방황하고 있는 지금의 이 여자가 원래의 나란 말인가?"

 나의 정체성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럴수록 정신을 가다듬었다. 바로 옆 침대에서 들리는 죽음을 부르는 듯한 신음 소리, 흰 천으로 덮인 채 실려 나가는 주검을 지켜보면서도 오직 자식을 살리려는 신념 하나로 무서움도 힘든 줄도 잊은 채 밤을 하얗게 새우며 아들 곁을 지켰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사흘 만에 아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탈출해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미음에서 죽으로, 죽에서 밥으로 식단을 바꾸며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그땐 경황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모성애였던 것 같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평생 묻는다는 옛말을 저승의 문턱에서 환생한 내 아들을 통해 배웠다. 내 아들 덕분에 친정어머니께서 우리 4남매를 기르시며 얼마나 애쓰셨는지를 깨달았다.

 나의 어머니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지금도 지극 정성과 포근한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고 계시다. 평소에 자주 보아 그립고 소중한지 몰랐던 가족에게 나도 어머니의 그림자처럼 최선을 다해 사랑을 베풀겠다는 다짐을 한다. 누구나 인생의 바다에서 자신은 순탄하게 노를 저어 갈 줄 알지만 그건 착각일 수도 있다. 때로는 거센 폭풍과 풍랑도 만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세상살이다. 내 아들에게 방파제를 뚫을 듯한 거센 파도가 들이쳐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을 키워주고 싶다.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다의 넓은 포용과 사랑으로 작은 상처도 보듬어 줄 수 있는 넉넉한 엄마가 되고 싶다. 무공해 바람을 날려주는 신록의 숲처럼 신선한 엄마로 살아가야겠다.

▶필자 ; 2005년 글 사랑문학지(誌) 시 등단/갯벌작가상 수상(2017년)/청라문학 총무이사/서구문화예술인회 문학협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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