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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이 설치는데 공권력은 뒷짐 지고 있다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5월 09일 목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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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최근 진주에서 발생한 방화·살인부터 광주의 12세 소녀 보복살인까지 참담한 비극이 연속 일어나고 있다. 마치 악당들의 천하처럼. 혹자는 이를 두고 조현병 운운하거나 경찰의 미숙한 대처 등등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지만 문제 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법은 너무나 멀리 있고 흉포한 자들은 가까운 곳에서 설쳐대는 이 암담한 현실에서 더욱 그렇다.

 도대체 공권력에 호소했다가 이에 앙심을 품은 악당이 보복살인을 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누가 책임지고 누가 적절한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인가?

 ‘스킨 인 더 게임’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현실에 참여한다는 뜻이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에 비춰보면 "책임을 지지 않는 자에게 해결을 맡기지 마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탈레브의 지적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극도로 복잡하기에 정치가나 학자, 관료나 전문가들 같은 대리인을 길러내어 그들로 하여금 우리 모두를 위한 판단과 실행을 맡기고 있다.

 그런데 그들 대리인들이 자신의 결정(행동)에 따르는 책임은 전혀 감당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직접 피해자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집단이나 개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있다면, 또 그들이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별로 배우지 못하고, 세상이 실제 돌아가는 형편을 모르는 인지부조화에, 위험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잇속은 자기 호주머니 속에 챙기는 추악한 짓을 일상화하고 있다면, 이런 정치가, 학자, 관료들 전문가들이 득세하고 있다면, 가정법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은 윤리적 파탄의 절정에 이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말과 실제 행동의 괴리, 의도와 결과의 괴리,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 전문가들과 일반인 사이의 괴리, 여기에 더해지고 있는 공권력과 안전사회를 바라는 국민과의 괴리는 날로 심화되는 판에 대리인들은 이 괴리를 적절하게(?)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과 영달과 보신에 급급하고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현실 아닌가 말이다.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보듯이 악당 하나를 잡으면 그 뒤에 악당이 또 도사리고 있고, 그 악당 뒤에는 더 큰 악당이 똬리를 틀고 있는 구조도 마찬가지다. 더욱 암울한 것은 세상 전체가 불의에 가득차 있는 마당에 먹고 살기 위해서 그 불의에 적당히 가담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동조자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투의 사고가 만연하는 우리 주변이다.

 물론 악행이 일어날 때마다 두 주먹 불끈 쥐며 분노할 수도 없으려니와, 세상의 악당들을 모조리 붙잡아 처벌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런 일이 지나치게 자주 발생해 감각이 무뎌진 탓도 감안해야겠고, 그 많은 악당들을 어느 선에서 응징해야 할 것인지 정하는 일도 쉽지 않음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바닥을 친 인성의 소유자들에게 인권을 들먹이는 작태는 뜻있는 많은 이를 절망케 한다는 점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이번에 보복살해당한 12세 소녀의 친모에게 구속영장심사에서 "범행 가담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구속을 기각했다. 마치 정해진 매뉴얼만 되뇌다 실기한 경찰처럼. 살해당한 소녀에게 이 세상은 차갑다 못해 잔인했고, 그 영혼마저 버림받았다는 명명백백한 사실 앞에서 참으로 책임지지 않는 전형으로 그 판사라는 인물이 거울에 비친다. 이 부끄럽고 참담한 죽음 앞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역사에서 ‘책임만큼 행동하는 것’은 오로지 민중의 지혜뿐이었다. 오늘 우리는 이런 과거만 기억해야 하는 것인지 실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들리는 소식으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건처리 과정에서 경찰 대응의 문제점은 없었는지, 친부와 계부 사이에서 모두에게 학대를 당했던 그 소녀에 대한 사회적 돌봄 서비스가 적절했는지 등에 대한 직권조사를 하기로 했단다. 사후약방문이라고 비판하고 싶지도 않다.

 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2위 경제 대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그 나라에서 힘깨나 쓰는 인물들에게 부끄러움은 과연 있는지 거듭 그 얼굴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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