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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이에겐 분홍색을, 여자 아이에겐 파란색을 입히는 것은 어떨까? 안될 이유는 없지만 그 반대가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는 핑크가 여성의 색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분홍이 남성의 색으로 널리 활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서양의 경우, 에너지 가득한 붉은색을 남성적이라 인식했다. 때문에 옅은 레드 계열인 핑크색 또한 남성의 색으로 통했다.

 동양권도 태양을 닮은 적색을 양기의 색이라 판단해 관복에 많이 사용했다. 조선시대 고위 관료의 의복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분홍 빛깔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핑크가 여성의 전유물로 취급되는 건 20세기에 정착된 편견이다. 오늘 소개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는 이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과 교만함을 꼬집는 작품이다.

 당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토끼 가족의 딸 주디는 경찰관을 꿈꾼다. 그러나 덩치가 작은 초식 동물이 경찰이 된 전력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불가능한 꿈이라 여긴다. 하지만 뜻밖에도 주디는 경찰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모든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 ‘주토피아’의 첫 토끼 순경이 된다.

 부푼 포부와는 달리 덩치 큰 동료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어갈 때 즈음 주디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의문의 연쇄실종 사건을 맡는다. 그 과정에서 조력자 닉을 만나게 되는데, 여우인 닉은 교활하다는 편견을 벗으려 했지만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중의 인식대로 사기꾼으로 살아가던 중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동물은 함께 수사하며 그들 자신과 주토피아 시민들에게 파고든 날 선 편견과 오만한 권력욕이 낳은 거짓 공포심, 다수의 횡포 등에 맞서며 성장해 간다. 그리고 주토피아 또한 진정으로 모든 동물이 하나되어 행복을 누리는 도시로 변모한다.

 동물원인 ‘zoo’와 이상향을 의미하는 ‘utopia’의 합성어인 ‘주토피아(zootopia)’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공존하는 낙원을 말한다. 그러나 이상적인 이름과는 달리 주토피아는 두려움과 혐오, 거짓과 부정이 만연한 곳으로 전락한다. 극중 연쇄 실종사건과 연관된 이런 부정적인 인식들은 결국 사건 해결로 극복된다. 다양성의 공존과 차별과 역차별에 대한 편견을 버림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이 작품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우화라 하겠다.

 영화 속 다양한 동물들의 이해 충돌은 인종간, 계층간의 갈등으로 읽을 수 있으며, 토끼는 힘이 없고 여우는 교활하다는 고착화된 인식이 낳은 차별과 한계를 풍자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단순한 권선징악적 구조에 안착하지도 않는다. 착하게 살자, 모두를 포용하자, 약자를 보호하자와 같은 원론적인 메시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특히 ‘약자’에 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 ‘주토피아’에서는 작고 연약한 동물도 약자이지만 소수의 육식동물도 다수의 초식동물들 사이에서 역차별을 당할 수 있는 약자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층적인 설정으로 편견과 차별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하는 영화 ‘주토피아’는 가정의 달 5월에 세대간 경계 없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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