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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현 (사)불교아카데미 이사장
모레가 불기 2563년 사월초파일(부처님오신날)이다. 보편적으로 위대한 인물의 탄생에 대해서는 신비로움과 함께 신화가 시작된다. 그것은 과학적인 시각에서 무조건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이 가진 종교의 감정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 탄생

 부처님을 샤캬무니(釋迦牟尼)라고 하는데 이는 ‘샤카족의 성인’이라는 뜻으로 샤카족은 지금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부근인 수도 카필라바스투에서 숫도다나왕(정반왕)과 마야 왕비가 다스리는 왕국이었다.

 어느 날 마야 왕비는 상아가 여섯 개 돋아 있는 흰코끼리가 본인의 옆구리를 통해 몸에 들어오는 신비한 꿈을 꾸었다. 그후, 열 달 후에 친정으로 가던 마야 왕비는 ‘룸비니’라는 아름다운 동산에서 왕자를 출산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560년으로 이때 태어나신 왕자가 ‘싯다르타’이다. 태어나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일곱 걸음을 걸은 뒤에, 한 손은 하늘을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고통에 빠져 있으니 내가 이를 편안케 하리라)

 이분이 바로 부처님이시고 이날이 음력 4월 8일로 ‘부처님오신날’이다.

# 출가

 싯다르타 왕자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출산하고 7일 후에 세상을 떠나고, 이모인 왕비의 친동생 ‘마하파자파티(최초 비구니 출가승)’에 의해서 성장한다. 태자의 신분으로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까지 하면서 부와 명예, 지혜 그리고 권력까지 모든 세속적인 삶을 살아오다가 ‘사문출유(四門出遊)’를 하게 된다.

 이때 인도에는 브라만교의 타락에 반발해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음식을 탁발하며 엄격한 금욕과 고행의 길을 걷는 ‘사마나’라는 수행자가 많았다.

 태자인 싯다르타는 시종인 찬나와 함께 별장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첫 번째 동쪽에서 노인을 보고 늙음을 알아 차리고, 두 번째 남쪽에서 병자를 보았고, 세 번째 서쪽에서 장례행렬을 보고 죽음이 생명의 끝임을 알아 차리고, 네 번째 북쪽에서 고행자(사마나)를 보면서 늙고, 병들고, 죽음이라는 인간의 괴로움에서 해탈하고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때 나이가 29살 음력 2월 8일로 ‘출가재일(出家齋日)’이다.

# 깨달음

 큰 뜻을 품고 왕위까지 버린 싯다르타는 최고의 경지에 적극적인 도전을 하면서 고행의 길로 접어들어 많은 선인들을 찾아간다.

 알라라칼마라 선인에게서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매우 깊은 정신통일)’ 성취하고, 웃다카라마풋다 선인에게서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생각함도 아니고 생각함이 아닌것도 정신집중)’을 성취하게된다.

 그러나 이 또한 생사의 괴로움을 해탈할 수가 없다. 이것은 열반의 경지가 아니다.

 선정상태에서는 번뇌가 없으나, 거기서 나오면 번뇌가 미세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고 음식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는 더 격렬한 고행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나 고행은 도를 이루는 길이 아니며 도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추구해야 한다면서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그때 ‘수자타’라는 소녀가 우유를 정제해 발우에 담아 싯다르타에게 올렸다. 그리고 ‘스바스티카’라는 청년에게 길상초를 한 다발 받아 보리수 나무 밑에 깔고 "최고의 깨달음을 얻지 않으면 죽어도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하셨다.

 이때 마왕인 ‘파피야스왕’은 싯다르타가 부처가 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세명의 딸을 ‘첫째 타나(집착), 둘째 아라티(성냄), 셋째 라가(욕망)’ 보내 유혹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싯다르타는 파피야스왕에게 부질없는 짓은 버리거라 호통을 치니 파피야스왕은 "나의 과거 공덕은 당신이 증명하였지만, 당신의 과거 공덕은 누가 증명한단 말이오" 하고 되물었다.

 이때 싯다르타는 조용히 오른손을 내밀어 땅에 대고 "대지여 나를 위해 증언해 다오"했다. 이 모습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 하며 흔히 볼 수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상 모습이다.

 그날 초저녁에 천안통(天眼通:시공에 구애받지 않고 밝게 볼 수 있는 능력)과 한밤중에 숙명지(宿命智:자신과 다른 존재의 과거 삶을 아는 지혜) 새벽에 인간의 고뇌를 모조리 깨뜨리는 깨달음을 얻으시니 드디어 부처님이 되셨다.

 보리수 나무 아래 그 자리가 깨달음을 성취한 ‘금강좌’이다. 이때가 35세가 되는 음력 12월 8일인 ‘성도재일(成道齋日)’이다

# 열반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서 함께 수행하던 5명의 수행자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고 죽림정사에서 불·법·승으로 승단의 기틀을 마련하셨으며, 기원정사에서 많은 설법을 하신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라는 연기론은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변화하며, 자신의 고유한 존재성을 지닐 수 없다는 ‘공’의 사상이다.

 부처님께서는 사성제(四聖諦)의 고·집·멸·도(苦·集·滅·道)와 팔정도(八正道)인 바른 견해·바른 사유·바른 언어·바른 행위·바른 생활·바른 정진·바른 생각·바른 선정을 실천하도록 가르친다.

 이후, 부처님의 포교활동은 45년 동안 행해졌다. 마지막 설법은 제자 ‘아난다’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설하지 않은 가르침은 없다. 승단에서 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내가 주먹 안에 쥐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후, 불편하신 몸으로 쿠시나가라에 도착해 강변에 있는 사라나무 밑에서 몸을 옆으로 누우시고, 내가 열반 후에 너희들은 "이제는 스승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하시면서 "자등명 법등명·자귀의 법귀의·제행무상·불방일정진"이라는 말씀을 하신다.(自燈明 法燈明·自歸依 法歸依·諸行無常·不放逸精進: 자신의 등불을 밝혀 자신에게 돌아가 의지하고, 진리의 등불을 밝혀 진리에게 돌아가 의지하라.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 덧없다. 그러니 게으름 피지 말고 정진하여라) "내가 열반 한 뒤에는 내가 너희 들에게 설한 나의 가르침(법)을 스승으로 삼아라"하셨다.

 이때가 80세 음력 2월 15일이며 ‘열반재일(涅槃齋日)’이다.

# 지금 부처님을 바라본다

 부처님께서 나에게 마음속으로 ‘지금 그리고 여기’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존재해야 우주 전체도 의미가 있고, 현재가 과거나 미래보다 더 중요하며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현재에 존재하므로 흘러간 과거를 뒤돌아보지 말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기대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사부대중(四部大衆)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출가자는 출가자의 가르침에 따르고, 재가자는 재가자의 가르침에 따르라." "모두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소임에 따라 마음 수행하고 자기 자신을 지켜라"라고 하십니다.

 불교는 인간 이외에는 믿음의 대상이 없으며, 창조신을 부정하며, 인간 내면이 가진 불성을 발견하고 번뇌를 정화하며 자유와 해탈을 추구하는 인간 성불의 종교입니다.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독자님들의 가정에 부처님 미소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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