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부모님 농사일 돕느라 밭에서 풀 뽑고 그랬어. 그때는 우리 집에 땅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도 옆집도 다 소작농이었더라고. 공장이 생기기 전 효성동은 가난한 동네였어. 버스도 안 다녀서 비가 와 개울이 넘치면 학교를 안 가는 날이라 좋아하고 그랬지."

 지난달 27일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에서 만난 이곳 주민협의체 이준홍(59)대표가 과거 효성동의 모습을 회상하면 건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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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59년 효성마을에서 태어났다. 효성동에 공장과 상가단지가 들어서 화려했던 성장기도 목격했다. 이 과정에서 토착민들은 하나둘씩 정든 터전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슬럼화된 효성동은 도시재생을 통해 사람 내음이 물씬 풍기는 마을을 꿈꾸고 있다.

 효성마을 토박이 이 대표는 어려서 마을에 학교가 없어 1시간 거리에 있는 부평초등학교까지 걸어다녔다고 한다. 등·하굣길에 주은 빈 깡통에다가 인근 미군 부대에서 나온 흔히 말하는 ‘짬밥’을 받아 와 가마솥에 끓여 먹었다고 한다. 당시 이 대표와 동고동락했던 친구 20여 명 가운데 현재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은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게 1979년인데, 마을 인근에 풍산금속㈜이 들어와 가장 번화할 때였어. 그때 공장에 다니며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이제는 좋은 아파트를 찾아 다 떠났어. 그러다 보니 한 번 들어선 마을에 건물을 재건축하기는 힘드니 신축 주택은 다 주변 동네에다가 한 거야. 그렇게 여기는 계속 쇠퇴의 길을 걸었고 변두리에는 새집이 생겼어. 사람들은 점점 핵가족화하면서 수요가 생기니 떠나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라고 넋두리했다.

 이준홍 씨가 대표로 있는 ‘효성마을 주민협의체’는 지난해 5월 시가 주관한 ‘주민이 만드는 애인동네 희망지 사업’ 공모에 선정되며 구성됐다. 애인동네 희망지 사업은 마을 주민 간 소통과 협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주민자치에 대한 이해 증진을 내용으로 시로부터 1억 원의 사업비를 받았다. 이때 만들어진 주민협의체는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 뉴딜사업에 효성마을이 선정되는 밑바탕이 됐다.

 이 대표는 협의체를 통해 주민 의견을 청취하는 일을 주로 맡고 있다. 이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이 또한 가장 어렵다고 한다. 주민들은 매달 셋째 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모여 마을에서 겪는 불편사항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각자 생계가 바쁘다 보니 정기적인 회의 참여보다는 시간이 생길 때 방문하는 주민들이 대다수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애인동네 사업의 결과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보니 뉴딜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의구심도 간간이 나왔다. 심지어는 ‘도시재생’이라는 말에 반감을 느끼는 주민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애인 사업은 재생사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민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다 보니 바로 결과가 나타나진 않았어. 마을 환경을 개선한다고 홍보하는데 이뤄진 건 없다고 느껴지다 보니 실효성을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었어. 어떤 주민분들은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보니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한다는 줄 알고 처음에 오해를 많이 하고 불안해 하셨지"라며 그동안 주민 설득 과정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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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도시재생사업은 건물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기존 건물은 안 건드리고 삶을 영위하게 하는 사업이라고 홍보를 했다"며 "애인 사업 때 함께 한 활동가 3명이 각 가정을 직접 방문하면서 개념부터 설명해 주고, 우리는 주민들의 단합과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설득하고 설문조사도 진행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 대표와 활동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점차 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됐다. 이는 1월 뉴딜사업 초반만 해도 28명이었던 주민협의체 구성원이 지금은 50명으로 불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효성마을은 지금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 매달 진행하는 주민 토론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가로등과 폐쇄회로(CC)TV 등 안전문제, 노후 주택의 냉난방 문제 등이다.

 쓰레기 수거차량이 제때 오지 않아 여름이 되면 골목 구석구석 쌓이는 쓰레기 때문에 주민들은 고충이 많다고 한다. 분리수거 시스템도 인력이 없어 무단 투기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 상태다. 공동수거장 조성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막상 자기 집 앞에 설치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주민공동체 조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 대표는 거듭 강조한다.

 노후 주택 문제는 이 대표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주민들 대다수가 구청에서 하는 공공근로와 가내수공업 혹은 정부가 제공하는 기초수급 지원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도시재생은 단순히 미관 개선 차원을 넘어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삶의 질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한 집에서 잘 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크게 다가오는 거야. 옛날 집들은 단열이 잘 안 돼서 냉난방비가 더 들어가. 보통 단열 안 되는 집은 다른 집에 비해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이 두 배나 더 나와. 어려울수록 지출을 많이 해야 하는 환경이니 악순환을 끊어내야 하는 거지."

 효성마을이 살기 좋은 마을이 되는 게 이 대표의 소원이다.

 그는 "효성마을은 무리하게 큰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정감이 가는 마을로 되살렸으면 좋겠다. 고향 같은 느낌을 주고 사람들이 평화롭고 서로 협력하면 살 수 있는 동네,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동네"라고 했다.

  김유리 인턴기자 kyr@kihoilbo.co.kr

  사진=홍승남 기자 nam1432@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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