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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5월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지천으로 널린 꽃과 수풀이 포근한 날씨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상쾌하고 훈훈하게 하며 ‘생명’과 ‘활력’의 기운을 절로 느끼게 한다. 5월에는 각종 기념일도 많다. 달력에 표시된 기념일만 거명하더라도 근로자의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유권자의날(10일), 부처님오신날(12일), 스승의날(15일),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18일), 성년의날(20일), 부부의날(21일), 바다의날(31일) 등이 들어 있다. 그런데, 금년엔 특별한 기념일이 5월에 새로 추가됐는데, 그날은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다.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념식이 열렸는데, 이는 올해 2월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한 이후 정부가 주최한 첫 행사였기에 그 의미가 매우 각별하다.

 이 기념식은 신분제 중심의 낡은 봉건제도를 타파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만민평등세상을 추구했던 반봉건 민주항쟁이자 국권 수호를 위해 일제 침략에 맞섰던 민족자주 항쟁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거행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기념사에서 "사람을 하늘처럼 받들고자 했던 의로운 혁명이 비로소 합당한 인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인 5월 11일(당시 음력 4월 7일 기준)은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인 1894년 동학농민군이 황토현 일대에서 관군과 첫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 ‘황토현 전승일’이다.

 이날의 승리를 토대로 동학농민군은 전국적으로 혁명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세기말 한반도와 동아시아 역사를 격동시킨 동학농민혁명의 대의는 1894년 3월 27일(음력) 동학농민군이 대내외에 공포한 창의문에 잘 나타나 있는데, 다음은 그 중 한 부분이다. "우리가 의(義)를 들어 여기에 이른 것은 그 본의가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蒼生)을 도탄(塗炭) 속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盤石) 위에 두고자 함이다. 안으로는 탐학(貪虐)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橫暴)한 강적(强敵)의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이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 연합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된 후 우리나라는 암울한 일제강점기로 접어들었고, 동학농민혁명은 ‘반란사건’, ‘전라도사건’으로 철저히 왜곡·축소된 채 제대로 된 역사의 조명과 평가를 받지 못하고 방치됐다. 이런 사정은 민족 내부의 극심한 좌우대립과 민족분단, 한국전쟁, 독재정권의 등장으로 이어진 정치적 암흑기 동안 지속됐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민초들의 애절한 슬픔과 연민은 노래로 전해지기도 했는데, 내가 어릴 적엔 "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청포장수 울고 간다"라는 애잔한 노랫가락을 주변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 노래는 고부농민봉기를 도화선으로 혁명을 주도했던 전봉준 동학농민군 총대장(‘녹두장군’이라 불렸다)을 기리는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행히 19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운동이 진전되는 상황하에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게 됐는데, 이를 전후해 ‘동학농민혁명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전개됐고, 그 결실로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비록 동학농민혁명은 좌절된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지만 그 정신은 항일의병,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광화문촛불혁명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경상도·충청도·강원도·황해도 등 전국에 걸쳐 일어난 민중들의 봉기로서 우리 민족의 근대사에 우뚝 선 위대한 ‘저항권’ 행사의 여정이다. 그 민주·자주의 정신은 겨레의 핏줄 속에 녹아있으며, 자손 대대로 이어 나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바라건대, 내년 5월 11일엔 남북한이 함께 ‘동학농민혁명기념일’ 행사를 공동 주최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 이전에 북미 간 비핵화협상이 큰 진전을 이루고 남북한 간 화해를 위한 구체적 조치들이 잘 실현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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