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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그는 아랫배가 더부룩해서 불편했지만 며칠 지나면 괜찮겠거니, 하고 지나쳤습니다. 문득 요즘 용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자 안심이 됐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부터는 마치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왼쪽 배가 따끔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마침 TV에서 대장암에 관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패널들이 경험한 증상들이 자신이 겪고 있는 것과 일치했습니다. 따끔거리는 그곳을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아, 대장암이구나!"

 그때부터 식욕을 잃어버렸습니다. 또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말기 암이면 어쩌지?" "항암치료가 힘들다고 하던데." "아직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이런저런 생각으로 심신이 지쳤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병원에 가서 내시경 해봐. 별 거 아닐 거야!"라고 말한 뒤 화제를 돌려버립니다. 섭섭했습니다. ‘나는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점점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눕기만 하면 대장암 말기인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나 장례식이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슬펐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껏 자신이 가족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미안했습니다. 건강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사랑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잠깐이었고, 이내 항암치료 과정에서 겪어야 할 장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견디다 못한 그는 결국 병원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환한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변비’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은 ‘마음’입니다. 걱정과 불안으로 잠 못 이루게 한 것도 마음이고, 그래서 지금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한 것도 마음이며, 살아 있는 내가 마치 죽은 것처럼 여기게 하는 것도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지어내는 이야기대로 내 몸과 내 삶은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지어낸 이야기가 곧 ‘사실’이라고 착각하니까 그런 겁니다. 이렇게 우리네 삶은 너무도 쉽게 마음의 노예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속성을 알아야 하고 마음의 장난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이 장난을 칠 때는 징조들이 있습니다. 걱정이 떠나지 않거나, 지나치게 불안하거나, 무언가에 꽂혀 의심이 가시지 않을 때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런 때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부정적인 생각은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숨어버리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 순간 제정신이 듭니다.

 마음의 속성을 알면 아래의 선문답 속에 숨어 있는 지혜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뒤주 속의 성자들」이란 책에 중국의 혜능 스님의 일화가 나옵니다. 스님이 어느 절 앞에 이르렀을 때 젊은 스님 둘이 다투고 있습니다. 절 문 앞에 세워둔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고, 한 중은 흔들리는 것이 ‘깃발’이라고 하고, 다른 중은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산은 흔들리지 않는데 비해 깃발은 흔들리지 않느냐? 그러니 흔들리는 것은 깃발인 것이다."

 "이 세상에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는 것처럼 바람이 없다면 깃발은 흔들릴 수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 바람이 흔들리는 것이다."

 말다툼이 끝이 나지 않자, 자신들을 지켜보던 혜능 스님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을 내려주십니다. "흔들리고 있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닐세. 단지 그대들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지."

 이렇게 마음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지어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몸이 이상하면 병원에 가면 될 일입니다. 의심이 나면 물어보면 될 일입니다. 이런 태도가 마음의 장난에 휘둘리지 않는 지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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