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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백령도 물개바위를 찾은 점박이물범들은 편안할까? 겨울이면 발해만의 유빙에 새끼를 낳는 점박이물범의 서식환경은 예전 같지 않다. 다채로운 어패류가 가득했던 발해만은 천혜의 어장이었지만 요즘은 아니다. 온난화로 유빙 형성이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공장 폐수가 걷잡을 수 없게 쏟아지면서 물고기가 괴멸돼 점박이물범은 다음 세대를 잇기 힘겹다. 그래도 잊지 않고 이맘때면 백령도를 찾아오니 고맙기 그지없다.

 인당수에 물고기가 많은 덕분이라는데, 작년보다 많이 찾아온 점박이물범은 물개바위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안타까웠는지, 천연기념물의 보호를 위해 정부는 물개바위 인근에 넉넉한 쉼터를 만들었다. 지난달인데, 낯설어 그럴까? 물범들이 새 쉼터를 외면한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하지만 곧 새 쉼터에 올라갈 것이다. 한두 마리 도전하면 이내 북적일 텐데, 작년 봄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도 비슷하게 경험했다. 남동산업단지 유수지 안의 작은 섬은 저어새로 포화상태였다. 중국 남해안이나 타이완, 그리고 일본 남단 해안에서 겨울을 보내고 번식을 위해 우리 서해안을 찾는 저어새에게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는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악취가 심해도 천적이 없다. 가장자리에 나무가 빽빽해 사람의 접근을 차단했다. 무엇보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 너머에 갯벌이 넉넉했다. 10여 년 전 첫 모험을 감행했던 저어새는 유수지에서 태어난 젊은 저어새들과 기억을 더듬어 다시 찾는 일이 반복됐고, 몇 년 전부터 비좁아진 것이다.

 인천시는 순전히 저어새의 번식을 위해 기존 섬보다 넓게 새 섬을 유수지 안에 만들어 줬지만 아쉽게 저어새들이 외면했다. 저어새의 번식 습성을 충분히 고려했어도 완공이 다소 늦었다. 작은 섬에 북적이던 저어새들이 공사 중인 섬을 피했고, 완공 후에도 사람들이 어슬렁거렸던 섬을 낯설어 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니 달라졌다. 망원경을 준비하고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를 가보라. 큰 섬에 저어새들이 모여 알을 품거나 갓 낳은 새끼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진귀하게 바라볼 수 있다. 작년 붐볐던 작은 섬은 오히려 한가해진 느낌이다.

 사실 올해도 작은 섬을 찾았다. 사람 냄새도 사라지고 면적이 넓어도 낯설기에 피했는데, 변고가 생긴 것이다. 너구리가 작은 섬을 침입해 30여 둥지를 망가뜨리며 알을 먹어치운 게 아닌가. 황급히 새 섬으로 둥지를 옮겼고, 이어서 100쌍 넘게 찾아와 둥지를 쳤다. 요즘 큰 섬은 200여 저어새들로 하얗게 빛난다. 저어새가 찾기 전부터 모두 떠난 이후까지, 10년 동안 정성껏 모니터링을 하는 저어새네트워크는 이맘때 ‘저어새 생일잔치’를 연다. 고작 4천여 개체 남은 저어새의 보전에 인천시민이 앞장서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저어새 네트워크는 둥지 재료인 나뭇가지들을 유수지 안의 섬에 넉넉하게 넣으며 번식을 돕지만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이다. 유수지인 관계로 장마 전에 수위를 낮춰야 하는데 그때 천적이 들어올 수 있다. 수위를 낮추지 않은 상태에서 호우가 밀려들면 둥지가 휩쓸릴 수 있다. 무엇보다 큰 걱정은 갯벌이 사라졌다는데 있다. 저어새가 찾아오거나 말거나 남은 갯벌을 모조리 매립하지 않았나. 갯벌을 잃은 저어새들은 먹성이 커지는 새끼를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시흥시의 호조벌이나 관곡지 연꽃마을까지 부지런히 왕복한다. 위험은 천적만이 아니다. 병풍처럼 가로막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

 환경부는 최근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 사무국을 2024년까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두기로 협약을 연장했다고 밝혔다. 그에 발맞춰 인천시장은 한반도를 찾는 철새의 60% 이상이 찾는 인천 갯벌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철새들의 서식지 보호를 약속했다. 시베리아 일원에서 호주와 동남아시아를 오고가는 철새와 나그네새들에게 갯벌은 생존을 위한 비빌 언덕이요 징검다리다. 사람이 독점하기 전부터 겨울이나 여름, 봄가을에 먹이를 찾았지만 요즘 봉변이 심각하다. 갯벌을 남기지 않은 인천이 특히 그렇다. 낯선 섬을 마다하지 않은 저어새는 여전히 불안하다. 인천시장의 약속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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