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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식~복요리 주메뉴 달라져도 사람은 그 자리에

동구 화도진로 ‘송미옥’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2019년 05월 17일 금요일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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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서 송미옥 2대 사장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부인과 아들, 며느리가 식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현서(73) ‘송미옥’ 2대 사장은 부모님 때부터 해 오던 음식점을 지키고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어 기쁘다.

 김 사장은 1951년 1·4후퇴 때 평양에서 부모님, 동생과 내려와 피란민촌(현 인하대학교 부지)에 자리잡았다. 먹을 게 없어 풀을 뜯어다가 허기를 채우곤 했다. 학익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은 일거리가 부족해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살이도 녹록지 않았고, 창신초를 졸업한 뒤 바로 인천서중학교로 되돌아왔다.

 송미옥의 창업주는 김 사장의 아버지인 고(故) 김종연 씨다. 김 사장이 중학교 3학년 시절 부모님은 평양에서 외식업 경험을 토대로 옛 인천제철(현대제철)을 설립하기 위해 들어온 독일 노동자들에게 식사를 전담하는 구내식당을 열었다. 2∼3년 뒤 독일인들이 돌아가자 김 사장 부모님은 동인천 중앙시장 인근(동구 화도진로 5번길 11-3)에 송미옥을 개업했다.


 송미옥은 언제나 푸른 소나무처럼 항상 맛을 유지하겠다는 다짐으로 지어낸 이름이다. 초창기 송미옥은 경양식 집이었다. 인천제철에서 독일 노동자들의 식사를 맡았던 김 사장 부모님이 중앙시장에서 경양식을 팔자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때만 해도 정통 경양식을 하는 집이 몇 없었다.

 김 사장은 "1950년대 후반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하는 그런 식당이 없어 손님이 많았다"며 "부모님 손 붙잡고 가게를 찾던 아이들이 지금 백발이 돼 찾아온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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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시 동구 송미옥 식당의 대표메뉴인 복중탕.
 1960년대 후반부터 주변에 경양식 집이 생겨나자 김 사장 부모님은 일식으로 전환한다. 어묵과 갈비찜이 유명했고 초밥도 같이 했다. 이때부터 복요리도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메뉴를 줄여 복요리에 집중했다. 1980∼1990년대 복요리의 인기로 송미옥은 최대 전성기를 누렸다. 중앙시장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꾸준히 찾는 이들로 북적인다. 김 사장은 일식을 하던 1970년 초부터 송미옥의 경영을 맡았다.

 김 사장은 "겨울철 손님이 더 많은 편이지만 여름철에도 꾸준히 손님들이 찾아 온다"며 "옛 맛과 정취가 그리워 오는 단골손님이 많아 항상 음식 맛과 가게 모습을 예전 그대로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973년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뒤 계속 건물을 그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최근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꿀 때도 상다리만 길게 바꾸고 상판은 그대로 썼다. 가게 분위기를 바꾸지 말아 달라는 손님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1977년 단층 건물에서 3층 건물로 바꾼 송미옥은 그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벽과 천장을 나무로 짜 정취를 더한다.

 김 사장은 "지금은 이렇게 벽과 천장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다고 한다"며 "이 모습이 너무 좋아 그대로 유지하려고 벽과 천장, 바닥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미옥의 대표 메뉴는 복 중탕이다. 복 매운탕과 복 맑은탕, 복 튀김, 복회 등은 복요릿집 어딜 가나 있다. 복 중탕은 복 매운탕과 맑은탕의 중간이다. 김 사장과 1973년 결혼해 곁을 지키는 그의 부인이 직접 담근 고추장과 된장을 써 국물 맛이 일품이다. 송미옥은 모두 자연산 생물 복만 쓰고 있다. 연평도와 동해바다에서 공수받아 쓰고 있다. 냉동을 쓸 수 있지만 맛을 지키기 위한 송미옥의 철학이다.

▲ 복집에 걸려 있는 마른 복어.
 강원 철원 출신인 김 사장의 부인은 시어머니에게서 송미옥 살림살이와 요리를 배웠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송미옥 음식 맛을 지킨 것이다. 복요리는 김 사장이 하지만 안살림과 김치와 장맛, 밑반찬(바지락젓갈, 나물 등)은 김 사장의 부인이 책임진다. 김 사장 처가에서 보내온 쌀로 장을 담근다.

 송미옥 옥상은 부인이 장독대로 쓰면서 장맛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매년 겨울철 송미옥 옥상은 잔칫집 같이 시끌벅적하다. 김장과 장을 담그기 위해 김 사장의 가족이 모두 모인다. 딸 셋은 출가했지만 김장철에는 송미옥을 찾아 부모님을 돕는다. 600∼700포기의 김장을 할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150∼200포기만 한다. 김치 소비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송미옥 옆 건물에 살림집이 있지만 예전에는 3대가 송미옥 안에서 살 때도 있었다. 김장하는 날 송미옥 가족들은 오손도손 옛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들 상민(38)씨는 올해 초 복조리사 필기시험에 합격해 실기시험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송미옥에서 근무한 지 10년이 넘었다. 제대하고 졸업한 뒤 송미옥에서 사회생활을 배웠다. 3대째 가업을 이어 받은 상민 씨는 지난해 결혼했다. 김 사장은 상민 씨가 아이를 낳으면 4대째 송미옥을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 지난 세월 송미옥 복집에서 쓰던 칼들.
 송미옥에는 전통이 있다. 역대 시장 등 기관장이 대부분 찾아왔기 때문에 복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얼마 전 박남춘 시장도 다녀가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뽑아 액자에 넣는 작업이 끝나면 박 시장과 찍은 사진도 진열장 한쪽을 채운다.

 김 사장은 "다시 젊을 때로 돌아가도 송미옥을 지킬 생각이다"라며 "아들과 그 후손들이 송미옥 간판을 없애지 않고 쭉 이어가 송미옥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맛과 추억을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했다. 이어 "93세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송미옥을 찾았던 배다리의 형제사 사장을 생각하면 오랜 시간 송미옥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자료=인천도시역사관 자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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