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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동연 용인대 객원교수
전국의 자율형 사립고교(자사고) 42곳 가운데 절반 이상인 24곳에 대해 올해 재지정 평가를 앞둔 가운데 시도교육청이 지정취소 기준점과 평가지표 등을 상향 조정하자 해당 학교들이 반발하고 있다. 자사고는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하는데 특히 올해 탈락 점수를 당초 60점에서 70~80점으로 대폭 상향하는 것이다.

 ‘자사고 폐지’가 현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 기조인데다, 자사고가 계층 간 사교육 격차에 일조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시도 교육감이 사실상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교육감의 권한이라지만 진영논리에 따른 수월성 교육을 부정하고, 평등교육을 지향하는 편향된 잣대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됐던 ‘SKY캐슬’처럼 자사고가 입시위주의 귀족학교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함께 이로 인한 일반고의 피폐가 꾸준히 지적돼 온 것이다. 단언컨대, ‘SKY캐슬’에 나오는 귀족학교처럼 전락한 자사고는 없다. "자사고가 우리의 공교육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식으로 자사고를 매도하는 주장은 매우 주관적이며, 객관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는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실붕괴’, ‘학교붕괴’로 지적됐던 우리나라 공교육 황폐화는 자사고 도입 이전인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교육 황폐화가 20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그 원인이 자사고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학교는 출석해 졸업장을 따고, 입시준비는 학원에서 한다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입학정원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대학 입학정원이 공급초과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일류대학 이른바 SKY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위주 교육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SKY캐슬’은 자사고를 귀족학교로 고발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 드라마는 ‘입주위주의 과열경쟁 교육이 교육의 황폐화를 넘어서 교사·학생·학부모 모두의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사회적으로 고발한 것이다.

 자사고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고등학교 평준화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시범 운영됐던 자립형 사립고가 원조다. 어느 한 정권, 특히 보수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요청에 의해 공론화를 거쳐 마련된 정부 정책이다. 자사고 도입의 취지였던 "학교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학교 선택권을 통해 학부모와 학생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고, 경쟁을 통한 전반적인 공교육의 질 개선"에 부합하도록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사실상 지난 20년 동안 운영해온 자사고를 폐지한다는 것은 교육정책의 계속성·일관성·성실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점에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독립된 100여 개의 국가 가운데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공시킨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세계 최빈국에서 벗어나 13위의 경제대국을 이룬 한강의 기적은 단연코 교육의 힘을 바탕으로 한 인적자원의 힘이 컸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경제대국의 규모에 딱히 걸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화적 수준도 과거에 비해 매우 높아졌다. 우리는 이른바 다양성이 존중되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지식기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수요도 다양한 것이 현실이다. 자사고는 과학고, 외국어고와 더불어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대안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교육수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교육정책이라야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급진적으로 자사고를 폐지하는 일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긁어서 부스럼을 내는 일이다.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해서 일반고가 갑자기 살아나고 사교육이 없어지지 않는다. 서울의 강남권과 비강남권, 도시와 농어촌 일반고 교육격차는 심각하다.

 교육당국이 우선 할 일은 자사고 폐지가 아니라 교육 취약지역의 공립학교부터 성공적인 공교육 모델을 만들어 공교육 정상화에 나서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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