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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PEN한국본부 인천지역부회장
계절의 여왕이라고 칭송받을 만한 5월이다. 피어난 꽃들로 온 나라가 꽃대궐이고 온화한 햇살과 결 고운 바람마저도 사랑스러운 날씨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까지 가정의 달 5월에는 기념일이 많다.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천진한 열 살의 내가 보이고, 은밀한 금지와 구속에서 풀려날 성년의날을 기다리는 풋사과 같은 스무 살의 내가 보이고, 헤어지는 시간 없이 평생 꽃길만 걷자던 동갑내기 부부인 서른 살의 내가 보이고, 엄마 편 듬직한 아들과 나폴나폴 노란 팬지꽃 같은 딸아이가 건넨 ‘엄마 사랑해요’ 어버이날 편지에 행복했던 마흔 살의 내가 보인다. 세월 흘러 아이들은 성년이 됐고, 가정을 이뤘고, 경제적으로 독립해 내 품에서 떠나갔다. 내가 그랬듯이.

 가족은 애증이 얽힌 서사이면서 장엄한 시간을 공유한 역사다. 월간 「샘터」에 최인호 작가가 연재했던 ‘가족 이야기’는 확장돼 갈수록 따뜻해지는 가족 성장사다. 1975년에 시작해 2009년까지 장장 34년6개월을 연재한 가족 이야기는 고정 독자가 많았고 나중에 단행본으로 출판돼 사랑을 많이 받았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떠오르는 책이다.

 가족과 가정은 평화롭고 화목한 것만도 아니라 가족끼리 상처를 주고 받는 일도 많다. 가족 간의 갈등으로 마음에 패인 상처를 보듬어 주는 가족 치료사 직업이 가정의 달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은 문제 있는 가정이 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근래에 뉴스로 접하는 비정한 사건들을 보면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에 소름이 돋는다. 가장 사랑하는 관계이면서 가장 상처를 많이 주고 받는 관계 또한 가족이다. 가족 심리 상담사의 말을 인용하면 ‘가족은 애증의 관계이면서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의 뿌리는 가족에서 부터다’라는 전문가 진단에 공감하게 된다.

 가족과 가정을 설계한 결혼을 했으면 배우자는 서로에게 지켜야 할 의무와 권리를 준수하면서 아이에 대한 양육의 방식도 건강해야 바른 가정을 이룰 수 있다. 동거, 부양, 협조, 정조의 권리는 결혼 당사자가 지켜야 할 의무이면서 권리라는 양지열 변호사가 쓴 글을 보았다. 가족법의 범위에서 이혼이나 상속 등 가족 간의 권리 주장에 대응하거나 변제받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지만 혈연으로 연결된 피의 무게는 상식을 넘어서는 무거운 관계라 법정 다툼을 불러온다고 한다.

 대가족제도는 멸종해가는 가족 형태가 된 지 오래고 일인 가구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라 가족의 유대나 의무나 권리가 점점 느슨해져 가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가정은 가장 편안한 곳으로 안심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마땅하다.

 요즘은 가족의 개념이 확장돼 받아들이기가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다. 반려동물이 최애 가족으로 대접 받고, 혈연이 아닌 가족 구성도 있고, 통과의례의 중요한 절차인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가족도 있고,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가족으로 자리잡을 날도 머지않았다. 복잡해진 세상만큼 각자의 편의에 따라 가족은 서로 상생하는 관계로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가정의 달 행사는 무조건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고 가족사진은 화목한 모습으로 남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누군가의 가족 구성원이기는 하지만 가정의 달이 부담스러워 더 외로워지는 사람도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가족도 마음 내어 자세히 보고 오래보면 사랑스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개나리꽃, 복주머니난, 앵초, 은방울꽃, 복숭아꽃의 꽃말이 희망이다. 봄에 피는 꽃이 희망인 이유는 모진 겨울을 이겨낸 기특함이 있어서다. 진부하지만 진리다.

 봄의 절정 5월은 희망이 만개하는 계절이기에 가정의 달이 5월인 이유로 충분하다. 오만 가지 갈등과 상처가 애증을 만들어도 5월은 ㅠㅠ로 아닌 ㅎㅎ로 마무리되는 따뜻한 가정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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