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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영일 가톨릭환경연대 대외협력위원장
계도시간을 거쳐 실질적인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 조치가 지난 4월 1일부터 시작됐다. 이후 요즘은 사업장에서의 준수 여부를 행정관청이 집중 단속하고 있다. 문화로, 일상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다소의 혼란이 불가피할 테다. 하지만 종국엔 환경보호를 위해 철저히 지켜져야 할 원칙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서울 망원시장의 비닐봉투와 일회용품 없는 ‘플라스틱 프리’ 실험이 참신하게 다가온다. 전국 각지의 정치인들과 연예인은 앞다퉈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에 나서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연간 비닐봉투 사용량이 2015년 기준으로 414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이미 전 세계 1위(연 116㎏)를 달린다. 쓰레기와 관련한 섬뜩한 통계는 또 있다. 한 시민단체가 쓰레기와 관련한 여러 자료를 살펴보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인당 쓰레기 발생량 4위, 연간 일회용컵 260억 개 사용(1인당 연간 520개), 전자 폐기물 1인당 연 15㎏, 음식물쓰레기 1인당 250g(생활쓰레기 중 25% 차지), 1년 일회용 우산비닐 씌우개 약 1억 개, 1년 일회용 플라스틱 샴푸·린스 56만 개, 생활쓰레기 중 40%가 1회 용품·포장폐기물이었다고 한다.

현실 속 이면을 보자. 유명 해외 언론이 주목한,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의 단면으로 비춰진 경북 의성의 쓰레기산. 정부의 조사를 보니 전국 235곳에 무려 120만t의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불법으로 방치된 상태. 어디선가는 이를 75만t 규모 서울 롯데월드타워 1개 반을 세워놓은 것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우리가 감히 오를 수 없는 산이면서 소름이 돋을 만큼 전전긍긍하기에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덩어리를 이룬 쓰레기의 상당량은 플라스틱, 비닐이나 페트병이 차지했다. 규모도 엄청나지만 돈은 안되고 처리에 골치만 아픈데 썩어 없어지기까지 족히 수백 년은 걸리니 가히 전율해 마땅하다. 만드는데 5초, 사용하는데 5분, 분해하는데 최소 500년이 필요하다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우리 곁에서 그렇게 음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발생량 자체를 줄이지 않는다면, 처리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처리량을 늘리지 않는 한 ‘산은 쓰레기산이요, 물은 치명적인 오염 침출수’일 뿐이다. 필자의 가정은 5인 가구다. 노부와 부부, 아이들 둘 해서 그렇다. 그러한 살림을 하다 보면 제법 신경 쓰이고 생각보다 손을 많이 타는 것이 쓰레기 정리와 배출이다. 꼼꼼한 분리배출과 함께 배출량을 줄여보려 나름 애를 쓴다고 하는데 쉽지도 않고 가족들의 호응을 얻기는 더욱 만만치 않다. 어쨌거나 쓰레기 중 가장 흔하고 많이 버려지는 것이 비닐봉투와 비닐포장재이다. 상품을 쌌던 비닐포장재, 담아서 들고 왔던 봉투, 겹겹이 싸서 주고 담아서 주니 그날그날 적잖은 양이 모인다. 껌딱지같이 따라 붙는다. 약 1주일 내외로 종량제 쓰레기봉투 20L짜리 정도만큼 빵빵해진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비닐류와 오염된 탓에 일반쓰레기로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들까지 셈하면 일부 줄인 양은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으나 멈출 수는 없다.

  그 다음이 종이류다. 대부분 포장재로부터 비롯된다. 이어 페트병이다. 물이나 음료, 각종 식재료가 담겼던 것들로 기본 부피가 있어 종이류와 함께 대략 1주일에서 2주일 사이에 내놓곤 한다. 필자의 집이 아파트이니 수백, 수천 가구가 모여 사는 아파트 전체를 고려하면 하루에도 얼마큼의 쓰레기가 쌓일지 상상조차 어렵다. 살기 위해 무언가를 먹고 마신 후에 어쩔 수 없이 배설을 해야 하듯 쓰레기는 우리 뒤에 고스란히 남는다. 쌓였던 쓰레기를 치우면 곧 개운한 기분이야 들겠지만 거기까지다. 원칙적으로 쓰레기는 재활용, 소각, 매립 등 세 가지 방법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 수도권쓰레기매립지가 있고 송도와 청라에 쓰레기소각장이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미처 처리되지 못해서 쓰레기는 산이 되고 바다로 흘러든다. 이어 다시 우리 곁으로, 심지어는 우리의 몸 안으로까지 촘촘히, 은밀히 스며든다.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쓰레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국가 쓰레기정책을 논할 수 있다. 기업의 생산방식 변경이나 책무를 따질 수 있다. 동시에 지혜로운 소비자로서의 자세를 말하고 싶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고 쌓이는 플라스틱 쓰레기라면 최소한으로 쓰자. 그리고 국가정책과 기업이나 유통업체를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우리가 되자. 다만 환경을 보호하고 쓰레기로부터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연습해야 한다. 불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익숙한 습관을 버리고 낯선 습관을 익히는 연습이 필요한 때다. 눈앞의 파국을 막는 시작은 깨어있는 인천시민이면서 소비자로서, 일상의 환경운동가로서 ‘나’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드러운 힘과 조용한 자제력으로 플라스틱 불복종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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