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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의식에 멋과 흥 가미… 화려한 부활로 위용 뽐내다

7. 남한산성과 전통문화-[2] 군영악대 ‘취고수악대’

정진욱 기자 panic82@kihoilbo.co.kr 2019년 05월 21일 화요일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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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재현 모습.
# 남한산성 취고수악대의 역사

 광주시 지역문화 중 하나인 남한산성 취고수악대(南漢山城 吹鼓手樂隊)는 1793년(정조 17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어청에 설치한 군영 악대다. 여기서 ‘취고수’는 임금의 어가나 현관들의 행차에 따르는 악대 가운데 하나, 행렬의 앞에 서는 악대를 말한다.

 조선시대 정묘호란 이후 중앙군사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남한산성에 설치한 중앙군영의 하나인 수어청(守禦廳)이 병자호란 이후 줄곧 남한산성에 300여 년 동안 주둔해 있었으므로 남한산성에는 600여 명의 수어사와 유수가 거쳐갔으며, 수어청 군사와 승군들이 상시적으로 근무하고 산성을 방비했다.

 특히 남한산성행궁 앞에는 악공청(樂工廳)이 자리잡고 있어(2012년 남한산성행궁 앞 악공청 터 발견) 악사들이 행궁 또는 관아에서 제례(祭禮), 연향(宴饗), 임금의 행차, 과거 급제자의 문희연(聞喜宴), 주조(晝操)와 야조(夜操) 등 군사훈련에서 취고수(吹鼓手), 세악수(細樂手)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찬읍지와 중정 남한지 기록을 보면 입으로 부는 취악기와 손으로 치는 타악기 연주자 314명으로 구성해 왕의 행차, 군대 의식, 대규모 행진, 군사훈련, 지방관아 향연 등에 활용했다.

 그러나 남한산성 취고수악대는 1895년 을미사변에 따라 군사제도가 개편되면서 해산해 전승이 단절됐다.

#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복원의 필요성

 조선후기 서울 외곽을 방어하는 수어청에 군영 악대로 취고수악대를 314명으로 편성·운영했던 기록이 조선시대 ‘사찬읍지(私撰邑誌)’와 ‘중정 남한지(重訂 南漢誌)’에 기술돼 있다. 1793년(정조 17년)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 조선 최고의 군대로 평가받는 장용영(壯勇營)에 취고수악대를 편성·운영하고 있었다.

 1990년 지적 자료인 경기광주부 양안에 기록된 남한산성행궁 앞에 악공청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복원이 필요하다.

 조선조 궁중의 선전관청(宣傳官廳)과 각 영문(營問)에 소속된 악수(樂手)들에 의해서 임금이 성문 밖이나 능(陵)으로 행차할 때 연주되던 세악수 중심의 대취타만이 연주되고 있다.

 현재 전승이 완전히 단절돼 있는 취고수악대를 복원해 연주하는 곳은 전국에 없을 뿐만 아니라 대취타와 다른 형태인 남한산성 취고수악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취타에는 없는 악기인 대각·솔발·점자를 복원해 연주하기 때문에 현재 연주되고 있는 대취타와는 많이 다르다. 취고수 음악은 궁중, 민간, 불교계의 세 방면으로 전승됐다. 이는 조선후기 취고수의 음악사적 의의가 있다.

 문헌 해석이나 풍속화 등의 해설에서 복식을 모르고 기술하는 일이 많아 복식에 대한 정확한 연구로 타 학문 분야에도 파급 효과가 크며, 조선시대 후기의 복식에만 맞춰져 있는 ‘취고수’ 복식 고증과 관련해 전 시대를 아우르는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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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재현 모습.
# 남한산성 취고수악대의 복원 과정

 광주광지원농악보존회는 남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단절된 남한산성 취고수악대를 복원하는 일이 그동안의 유형문화재 중심의 복원 작업을 무형문화재까지 확대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복원에 관심을 갖고 준비했다.

 2013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예술 복원 및 재현’ 사업에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복원사업자로 선정돼 그해 7월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복원 및 재현을 위한 학술세미나’ 개최, 9월에는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복원 및 재현 공연’을 하게 됐다.

 이로써 남한산성 취고수악대는 100여 년 만에 그 형태가 복원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행렬 편성 및 악기, 음악

 남한산성 취고수악대의 행렬 편성 및 음악, 악기, 의상 등은 관련 학자 및 연구원들의 복원 및 재현을 위한 학술 세미나와 복원 및 재현 공연 등을 통해 고증받아 복원했다.

 현재도 남한산성 취고수악대에 대한 행렬 편성 및 음악은 연구 진행 중이며, 지금까지의 고증과 학설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한산성 취고수악대의 행진 편성은 ‘전도 무동-기패-전도 호위대-대취타-왕(대신 수령)-삼현육각-수행인-후도 호위군사’로 된 귀인 행차 유형으로 편성되거나 ‘전도 악대-기패-전도 호위대-대취타-대장(大將)-삼현육각-중군(中軍)-후도 호위대-군대’로 된 군대 행렬로 편성된다.

 대취타는 ‘호적-나팔-소라-바라-북(용고)’으로 악기가 편성되고, 삼현육각은 ‘피리-대금-해금-장구-북’으로 편성돼야 한다.

 남한산성 취고수악대의 행진 음악은 대취타 악기 편성 음악에서는 대취타(무령지곡)가 중심이 되지만 때로는 대취타 외에 ‘취타 타령-취타 염불-취타 굿거리’도 연주되고, 삼현육각 음악은 여민락(무환지악)이나 취타 외에 ‘길군악-길타령-별우조타령-군악(징각지악)’이 연주되는 왕, 대신, 수령과 같은 귀인의 행차 음악이 연주될 수 있다.

#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복식

 조선시대 취고수 복식들은 다루는 악기나 소속 집단 그리고 참가하는 행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초립에 철릭을 입는 양식은 주로 연향에 착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행사에도 착용됐던 남한산성 취고수 복식은 군복의 예를 따라 전립, 협수 위에 전복을 입는 방법으로 고증하며, 관악기와 타악기 연주자로 구분해 이중의 복식으로 고증돼 관악기 연주자는 흑립에 직령을, 타악기 연주자는 전립에 협수, 전복을 입는 것으로 고증할 수 있다.

정진욱 기자 panic82@kihoilbo.co.kr

사진=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제공

 ※본 내용은 민성기 광주광지원농악보존회 대표가 「광주문화」에 수록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일반 학계의 주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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