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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며칠 전 뉴스를 접하고는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미국의 모어 하우스 칼리지 졸업식장에서 연설을 한 로버트 스미스라는 흑인 사업가가 뉴스의 주인공입니다. 그의 말입니다.

 "오늘 저는 이 나라에서 8대 동안 이어진 우리 가족의 대표로서 졸업생 여러분의 앞길에 소량의 연료를 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 다음에 나온 그의 제안은 졸업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저희 가족이 여러분의 학자금 대출금 모두를 갚아드리겠습니다."

 학교 측이 계산해보니 최소한 1천만 달러(약 119억 원)나 된다고 합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 돈을 이렇게 쓰기에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스물두 살인 애론 밋촘이란 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믿을 수 없었어요. 심장이 멎는 듯했고, 우리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2억4천만 원이나 되는 대출금이 발목을 잡고 있었는데, 그게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모어 하우스 칼리지의 토마스 총장은 방송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융자 빚을 안고 있으면 미래를 개척할 때 선택의 폭이 줄어듭니다. 이번 장학금으로 학생들은 꿈과 열정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로써 융자 빚을 탕감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이 약 4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사랑의 나눔이 많은 젊은이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높은 장애물을 순식간에 없애 버린 겁니다. 더더욱 훗날 이들이 성공한 후에는 누군가를 위해 자선을 베풀 겁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사랑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게 되니 말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을 ‘바보’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은 이런 바보들의 선행 때문에 세상은 조금씩 더 아름다워지는 게 아닐까요.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 기억이 납니다. 아르헨티나의 어느 골프선수가 한 대회에서 우승을 한 뒤 자신의 차에 오르려고 할 때 한 젊은 여성이 다가와 울면서 하소연했습니다.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들의 하루 치료비가 수백 달러나 든다며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버트 드 빈센조라는 이 골프선수는 아들의 쾌유를 빈다고 말한 뒤, 망설임 없이 상금으로 받은 수표에 사인을 하고는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며칠 뒤 그 소식을 들은 한 사람이 그에게 그 여자는 사기꾼이고 아직 미혼이라 중병에 걸린 아들이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때 빈센조는 안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 다행이구먼. 중병에 걸린 아들이 없다는 게 말이야."

 보통사람 같으면 자신이 속았다는 자책감과 함께 화를 낼만도 할 텐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역시 ‘바보’였습니다.

 평생을 피아노 연주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노인은 앞을 못 보는 소년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이제 죽을 때가 되자 소년의 앞날이 걱정돼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 눈을 뜨게 하는 비밀이 있단다. 그 비밀은 바로 저 피아노 안에 숨겨 놓았어. 하지만 그 비밀이 적힌 종이는 네가 천 번째로 피아노를 치는 날이 되어야만 꺼낼 수 있단다."

 노인이 세상을 떠난 다음부터 소년은 죽도록 연습했습니다. 천 번째 연습을 마친 날, 드디어 소년은 그 종이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요? 백지였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이미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돼 있었습니다.

 노인의 지혜도 빛나고 노인의 말씀을 지켜낸 소년의 태도도 빛이 납니다. 이렇게 세상은 자신의 것을 타인을 위해 나누는 사람들, 사람들이 ‘바보’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 때문에 살 만한 세상이라는 기적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방송에서 본 문장 하나가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세상이 아름다워질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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