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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 영어과 교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욕심은 무한, 다양하다. 정치를 ‘하겠다, 안 하겠다’ 번복을 반복하기도 하고, 막말과 날치기, 협잡과 폭력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그러나 권력이라는 사다리의 정점에 오르고 나면 환희와 평안함보다 불안과 초조, 외로움과 허무함이 그곳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권력자들의 얼굴이 종종 볼썽사납게 변하는 것은 권력은 얻었어도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권력을 얻고 난 후, 갈등하는 권력자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내고 있다. 맥베스는 던컨 왕을 시해(弑害)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불안·초조로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자기가 죽인 던컨 왕이 오히려 부럽다고 말한다.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왕의 시해를 놓고 갈등하는 맥베스에게 ‘당신도 남자냐?’고 자존심을 긁어버렸던 맥베스 부인도 결국은 몽유병 환자가 돼 자살하고 만다. 왕을 시해하고 피 묻은 손은 간단히 씻으면 그만이라고 맥베스의 야심을 자극했던 그녀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젖 먹는 아이의 머리통이라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겠다던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잔혹한 캐릭터다.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인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부당하게 권력을 손아귀에 넣은 맥베스는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눈앞의 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한다. 맥베스는 뱅쿠오라는 장군의 후손이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기억하고 뱅쿠오와 그의 아들을 죽이려 든다. 뱅쿠오는 살해되지만 아들 플리언스는 도망친다.

 그를 죽인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대관식이 베풀어지는 연회장에서 피투성이 모습을 한 뱅쿠오 유령이 나타나자 맥베스는 경악한다. 물론 맥베스에게만 보이는 유령이다. 맥더프를 조심하라던 마녀들의 예언을 상기하며 그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후환이 두려워 가족을 몰살한다.

 독해져 가는 맥베스지만 처음에는 왕이 되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노르웨이 왕과 역적 맥도날드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돌아오는 길에 ‘당신은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말에 그의 정치적 야심에 불이 붙는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읽기」의 저자인 영국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마녀들의 예언을 듣는 순간부터 그녀들의 짓궂은 언어는 맥베스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했다고 말한다. 이미 맥베스의 마음속에 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맥베스가 다시 만난 마녀들은 ‘여자에게 태어난 사람은 맥베스를 죽일 수 없다’는 말도 한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맥베스였지만, 그를 공격해온 맥더프는 열 달이 차기도 전에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난 자였다.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하지 못한 맥베스의 통찰력 부족이 스스로를 비극으로 몰고 간다.

 안타깝게도 맥베스는 연극의 마지막까지 마녀들의 말에 사로잡혀 ‘여자로부터 태어난 자에게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역술인의 말만 믿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연극이 상연됐던 당시의 영국 사람들은 마녀, 유령 등에 관심이 많았고, 국왕 제임스 1세도 마녀에 관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맥베스는 맥더프에 의해 살해돼 그의 머리통이 맥더프의 장대 끝에 꽂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 연극이 사극이 아니라 비극으로 이해되는 것은 「맥베스」가 자신의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파멸해가는 내적 갈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악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맥베스는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 제 시간이 오면 무대 위에서 활개 치며, 안달하지만 얼마 안 가서 영영 잊혀져 버리는 가련한 배우, 백치들이 지껄이는 무의미한 광란의 얘기"라고 읊조린다.

 헛된 욕망과 정치적 야심을 숨긴 일부 정치꾼들이 기회만 되면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고 ‘무의미한 광란의 얘기’를 지껄여 대지만, 부정하게 권력을 움켜쥔 자는 맥베스처럼 자신도 또 무너져 내릴 운명에 서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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