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jpg
▲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883년 인천 개항과 동시에 외국의 여러 조계가 설치됐다. 일본조계는 일본영사관(현 중구청)을 중심으로 자유공원 동서사면 2만6천여㎡를 점유했고, 청국조계는 일본조계의 서쪽 현 선린동 일대의 약 1만6천여㎡, 각국조계는 일본 및 청국조계를 둘러싼 약 46만여㎡를 차지했다. 협소했던 일본조계에 일본인들의 이주가 증가하면서 각국조계와 조선인 거주 지역으로 주거 범위를 조금씩 넓히기 시작했지만,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이 4천 명 이상으로 급증하면서 주거공간은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일본조계지 확장 방안은 바다를 매립해 거류지로 삼는 해안 매립이 비좁은 조계를 확장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으로 부각됐다.

 1895년 이래 동구의 만석동은 매립 1순위로 주목의 대상이 됐다. 만석동 일대는 인천 개항장의 배후지로서 해안은 수심이 얕은 개펄이라 수운이 불편했지만 개펄을 메우면 당장에라도 많은 토지를 쉽게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 경인철도역이 인근에 부설될 경우 굉장한 요지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고수익 발생에 따른 사업방식 이견과 일본의 세력 확장을 원치 않는 각국공사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일본이 대규모 매립을 단행한 것은 러일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1905년 이나다(稻田勝彦)에 의해서였다. 이나다는 나가사키 출신으로 1895년 인천으로 이주해 사업을 시작, 인천역 앞에서 이나다여관을 운영하던 건축업자였다. 1897년에는 강화도 동막석산의 채굴 특허를 획득했고 별도로 토목 청부사업을 비롯해서 철도를 포함한 제 공사에 관계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 무렵부터 개발 이익을 노리고 만석동 일대의 갯벌과 토지를 상당수 미리 매입한 상태에 있었다. 이후 경제력을 바탕으로 일본인 사회의 중심인물로 부각됐다. 만석동 매립공사는 1906년 9월 30일에 완성돼 작은 해변 마을이 30여만㎡의 시가지로 조성됐다. 준공식에는 경인지역 주요 일본인 500여 명을 초대하며 위세를 과시했다. 원래 이나다는 매립을 통해 일본인 하층민의 거주지와 공장지대로 불하할 계획을 세웠다. 초기에는 콩, 소맥 등 원료와 가공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쉬운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간장 양조장이 생겨났다. 1906년 일본간장주식회사(노다간장주식회사 인천공장의 전신), 1908년 6월 다카스기 노보루(高杉昇)가 세운 다카스기 간장부, 1912년 3월 토요타 다케조(豊田竹藏)의 토요타 간장 양조소 등이 그것이다.

 또한 간장 양조장과 관련해 재제염소(再製鹽所)가 개업했다. 재제염업은 값이 싼 중국산 천일염을 해수에 녹인 후 재가공하는 것으로 중국산 천일염의 반입이 쉽고 경인철도를 통해 유통이 쉬운 인천에서 크게 발전했다. 1908년 12월 만석제염소, 1910년 4월 야쓰후지제염소, 8월 노미야마제염소, 11월 시바타제염소가 모두 개인 경영으로 개업했다. 그러나 지반이 약해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필요로 했다. 이나다는 매립지 개발로 동분서주했는데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해안과 근접한 것에 착안해 이곳을 유원지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1911년 당시 선화동에 있던 부도유곽을 본떠 ‘묘도유곽’을 설치했다. 매립지에서 묘도(괭이부리) 가는 길에 2층짜리 객실 6∼7채를 만들고 구릉지(현재의 만석교회)에 해수탕과 고급 음식점을 갖춘 ‘팔경원(八景園)’이라는 위락시설을 세웠다.

 팔경원이란 묘도 위의 언덕에서 한강하구와 강화, 영종 등 근강팔경(近江八景)을 감상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초대 조선총독 이토히로부미는 ‘풍류 통감’, ‘색귀(色鬼)’라 별칭됐는데 인천에 오면 이곳 팔경원에 들렀다고 전해지지만 매립지 개발은 난관에 봉착했다. 결국 이곳은 한동안 중국인들의 채소밭으로 전락하거나 잡초 무성한 황무지로 방치됐다. 일제의 식민정책에는 조선에 사회간접자본 관련 공장을 만들 계획이 없었고, 거기다가 소비재 공장들도 물이 풍부하고 땅값이 더 저렴한 서울 한강유역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30년대 일제의 침략전쟁이 본격화될 무렵 대규모 중공업 공장이 들어서면서 만석동 매립의 의도가 실현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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