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인천시는 중구에 위치한 제물포구락부에서 세계 맥주를 판매하는 내용 등을 담은 ‘더불어 잘 사는 균형 발전 방안’을 발표한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17호인 제물포구락부는 지난 1901년 지어진 건물로 개항기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사교 클럽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당구를 치며 술도 마셨다.

 그래서인지 인천시는 전시관으로 사용되던 제물포구락부를 세계 맥주를 판매하거나 카페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시의 활용방안을 접한 지역사회는 ‘몰역사적 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비난 여론에 세계 맥주를 판매하겠다던 시의 계획은 슬그머니 수그러들고 현재는 활용 방안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얼마 전 SNS를 보던 중 제물포구락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행사 소식을 듣게 됐다. ‘구락부 가면무도회’였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역사와 왈츠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개항기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간단한 강의를 들은 후 사교댄스(왈츠)를 배운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진행되며, 성인 선착순 20명을 대상으로 한다. 모두 무료다. 지난 4월부터 오는 9월까지 진행된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에는 참가자들이 가면을 쓰고 함께 왈츠를 춘다. 제물포구락부를 위탁 운영 중인 인천중구문화원 블로그에는 고급스러운 간식과 가면무도회를 즐길 수 있다는 홍보 문구도 나온다.

 제물포구락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분쉬 박사의 일지에 따르면 제물포구락부에서 무도회가 열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01년 12월 10일 "28일에는 제물포클럽에서 무도회가 열리는데, 저도 물론 가려고 합니다"라며 "사람을 사귀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라는 내용 등이다.

 역사가 담긴 공간에서 시민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을 테다. 하지만 사교댄스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건전하지만은 않은 나에게 가면까지 쓰고 문화재라는 공간 안에서 처음 보는 이성과 춤을 춘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어쩌면 개항기 수탈의 세월 속에서 인천을 찾은 외국인들의 생활상을 재현해본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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