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훈.jpg
▲ 정연훈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북부지원 대기환경팀장
서유럽의 8박 10일 여정, 30년 만의 일탈. 복잡한 생각은 꽁꽁 묶어놓고 가벼운 마음과 가슴 설렘으로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늘 긴 여정을 하얀 노트에 물음표만 가방에 넣고 다녔지만 이번은 다른 여행과는 사뭇 다른 기분으로 사전지식 습득과 준비로 무장을 했다. 모든 순간들을 차곡차곡 빈 노트에 추억을 채워보려는 마음으로….

 정말 서유럽은 거대한 역사 박물관이자 자연의 보고이다. 어디든 서 있는 자리가 그림이고 작품이다. 축복받은 나라다. 하늘은 언제나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 미세먼지로 일그러진 우리나라와는 분명 차별화된 부러운 나라다. 자연이 살아 있고 역사의 심장박동이 아직도 멈추질 않았다. 또한 사람들이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일상생활이 부럽다. 조금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옛것을 지켜내고 영혼을 살찌우는 그들의 모습에 월계관을 씌어 주고 싶다.

 날씨도 변화무쌍하다. 파란 하늘이 순간에 변해 비가 내린다. 멋진 조망도 비안개에 숨어 몽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도 좋다. 걷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이는 햇살이 눈이 시리다. 비가 그치고 투명한 하늘이 나뭇잎을 비추며 반사된 빛은 내 눈을 황홀하게 한다. 또다시 발걸음은 룰루랄라 가볍다. 풀냄새와 꽃향기,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는 최고의 힐링 장소다.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조류들은 우리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날갯짓으로 반긴다.

경이로운 유적들은 절로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고 선인들의 진한 땀과 지혜에 숨이 절로 막히고 감동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문득 경기도 식구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런 행복을 허락해준 도민에게 머리 숙인다. 또한 한가롭게 부러워하고 즐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가슴에 복받쳐 오른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꽉 찬 가방처럼 머릿속에 해야 할 일로 가득 담고 가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파란 하늘의 복원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문화재 보존과 가치 창출, 운영 프로그램 개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자신에게 묻고 답해야 될 막중한 책임감을 가슴에 담고 귀국길에 올랐다.

 8박 10일의 여정이 끝났다. 모든 일이 시작과 끝이 있거늘 아직 진행 중이라는 착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천재 선조들이 주는 부가가치를 누리는 유럽인이라고 치부하기엔 엄청난 명작과 명품들을 지켜내고 가꾸는 노력에 깊이 머리 숙인다. 기억하고 싶은 역사만 남기고 기억하기 싫은 역사는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는 그들의 생각이 옳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재 및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꿋꿋이 헤쳐 나가야 한다.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불도저로 과감히 밀어버리는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자연과 유적지 환경보전 등에 대한 기술 개발과 연구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1t의 생각보다 1그램의 실천이 중요하다. 우리는 머리로 아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가슴으로 깨닫고 손발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물은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진정성을 가진 감성으로 문화재와 환경, 개발과 보존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명쾌한 답을 기대한다. 모든 것을 글밭에 일궈 낼 수 없어 이젠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연구원으로 돌아가련다. 한참 동안 서유럽의 매력에 취한 감동으로 살아 갈 것이다. 그리곤 가슴에 담은 아름다운 풍광들을 한 페이지씩 꺼내 보련다. 다시 한 번 진한 울림과 감동이 있는 여행을 배려해주신 경기도 모든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