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1.jpg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주 홍군(인민해방군 전신)이 ‘대장정’을 시작한 장시성 위두현의 장정 출발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면서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면서 의미 있는 장면을 보여줬다.

 장정 출발 기념비는 85년 전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수뇌들이 국민당 군에 포위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과감히 홍군 주력부대를 도하시키고 1년여가 넘는 기간 동안에 약 1만㎞의 거리를 걸어 옌안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이른바 ‘마른장정’의 출발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유적이고, 이후에 공산당 지도부는 전략을 세우고 인민들의 지지를 얻어 대반전의 승리를 쟁취한 상징으로 꼽혀온 것으로 시 주석이 의미심장한 장면을 의도했다고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미의 통상 분쟁에서 중국의 기술굴기에 대한 ‘경제 신냉전’이라는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를 대하는 시진핑 주석과 중국 권력층이 비장한 각오를 압축해 준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 두 권력자의 싸움이 아니라 중·미의 다음 세대 간 대결전의 양상이 분명해 보인다고 하겠다.

 최근 미국은 중국 제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에서 중국과 중국 정보기술(IT)의 상징이랄 수 있는 세계적 통신기업 화웨이 등에 대한 규제를 숨 가쁘게 쏟아냈다. 미 상무부는 확실한 증거도 없이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면 국가 안보에 영향을 주는 기밀이 중국으로 빠져 나간다며 화웨이와 그 계열사 68곳에 거래제한 기업 지정을 했고, 이어서 구글과 인텔 등 주요 정보통신 회사들은 화웨이에 서비스와 칩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무분별한 도발에 대해 무릎을 꿇을 수 없다. 우리가 자국의 제조업 기반 육성과 기술 혁신, 녹색 성장을 통해 질적 성장으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정당한 정책이며 마땅한 지향이다. 미국 입장에서 인공위성 지피에스(헨)를 대체할 베이더우(북두) 위성항법 시스템이나 아마존을 능가하는 알리바바의 성장,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의 결제 수단을 대체할 위안화 결제시스템(CIPS)의 약진, 그리고 우리의 우주과학 기술이 이룬 달 탐사선의 달 뒷면 착륙 성공 등등에 위협을 느끼고, 우리의 5G, 인공지능(AI), 빅테이터, 무인수송 수단 등을 미래 핵심기술 영역에서 기업들이 혁혁한 성과를 거둬 선두에 있는 미국 기업들에 바짝 뒤쫓는 것에도 몹시 초조했을 터이나 그렇다고 미국의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에 큰 악감정을 가진다거나 우리 국민이 애국 소비에 열중해 미국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미 양 국민의 다양한 교류가 더욱 확대되고 양국이 G2답게 협력해 인류의 평화와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거듭 주장한다."

 중국 언론의 보도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따로 있다. 미국의 러스트벨트(미 북부·중서부 등 한때 전통적 제조업의 중심지로 호황을 구가했으나 지금은 불황을 맞은 지역)와 실리콘밸리(미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첨단기술 산업단지)가 이번 갈등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예상보다 중국의 숙련노동이 빠르게 고부가가치화 됐고, 중국이 실리콘밸리의 하청 제조기지가 아니라 자체적 플랫폼과 기술을 갖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기에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게 된 까닭이다. 따라서 중·미 갈등은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동안 시진핑 주석은 역대 중국 지도자들처럼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따라서 이번에는 미국에 ‘할 말은 하는’ 자세로 전환을 뜻하는 것인지 여부는 다음 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나 미국의 전례 없는 압박과 중국의 반미감정 고조가 타협 가능성을 어둡게 하고 있다.

 중·미의 이런 갈등 속에서 경중안미(經中安美 )의 우리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면서 국익을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이지 몹시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갈등이 장기화되면 필연적으로 중·미 양쪽에게서 "한국은 어느 편이냐?"는 근본적 질문에 답하기를 요구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익을 위한 선택의 갈림길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