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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22편의 히어로 영화를 선보여 왔다. 이 모든 연작들을 집대성하는 ‘어벤져스:엔드 게임’이 지난달 개봉해 국내외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해 등장한 슈퍼 히어로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우선 마블의 영웅만 하더라도 토르,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블랙팬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꼽아 볼 수 있으며, DC코믹스의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은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대표적인 히어로들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블 스튜디오는 ‘엔드 게임’ 이후로도 새로운 히어로들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크린 속 영웅들이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보다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범람하는 영웅들의 잦은 등장에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글래스’는 색다른 히어로 장르로 영웅서사의 전형성을 탈피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실 영화 ‘글래스’는 샤밀란 감독의 히어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만큼 전작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언브레이커블’은 어떤 외부의 충격에도 다치지 않는 강철 체력의 사나이인 데이비드 던이 자신의 특별한 힘을 인식하는 과정을, ‘23 아이덴티티’는 23개의 다중인격을 지닌 케빈이 24번째 자아인 비스트를 깨우는 이야기가 중심이 됐다면 영화 ‘글래스’는 두 초인의 설계자인 미스터 글래스가 서사의 중심을 이루는 작품이다.

 뜻밖에도 ‘글래스’에서 세 사람은 정신병원에서 조우한다. 이들의 담당의사인 스테이플 박사는 세 사람의 병명을 과대망상증으로 보고 치료에 들어간다. 현실 자아에 대한 불만족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믿는 허황된 생각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의사의 진료에 데이비드와 케빈은 거의 설득된다. 하지만 글래스는 달랐다. 그는 야수와도 같은 비스트의 힘을 믿었고 무적의 데이비드 또한 초인이라 확신했다. 글래스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병원의 경비시설을 무력화해 두 초인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다. 그러나 특별한 존재를 원하지 않았던 세상은 오히려 그들의 정체를 은폐하려 한다.

 영화 ‘글래스’가 보편적인 영웅 이야기와 가장 다른 점은 선악의 모호한 경계에 있다. 선한 논리 속에 세상의 평화를 이뤄 내고 평범한 이웃의 안전을 지켜 낸다는 슈퍼히어로의 사명이 이 영화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되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 위에 선 신의 존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악당이 있으면 그를 막는 영웅이 탄생하고, 이에 더 사악한 악당의 출현은 보다 강력한 초인을 끊임없이 불러내기 때문에 세계는 양쪽 모두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 ‘글래스’에서는 악당과 싸우는 히어로들의 가공할 만한 파워를 화려하게 보여 주는 장면을 찾을 수 없다.

 이 영화의 초점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는 것에 있다. 남들과 다른 까닭에 각자의 이유로 숨어 지내던 세 사람은 주변인의 도움으로 본인의 특별함을 인식하게 되지만 다시 세상의 잣대에 부딪혀 능력을 부정 당한다. 그러나 끝내 재능을 확신하며 존재 이유를 깨닫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는 평범함 속에 묻혀 지내기보다는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는 도전적인 삶을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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