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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세계 유명인들의 후회’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후회를 하고 있을까요?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이 임종을 앞둔 어느 날, 사람들이 자신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삶을 돌아보니 내게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더라"고 그 이유를 들었습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도 같은 말을 합니다. 한 대학생이 성공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기겠지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젊었을 때는 그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평가받지만, 정작 세상과 이별해야 할 때가 되면 이제까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긴 성공의 척도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일 겁니다. 맞습니다. 삶은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느냐의 여부로 행복과 불행으로 갈립니다. 물론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랑의 방법에 서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배워야 할 기술이라고 말했나 봅니다. 샤를르 드 푸코의 ‘나는 배웠다’라는 시에서도 똑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 나는 배웠다.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

 시인의 통찰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이런 지혜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그 사람을 탓했던 잘못들을 조금은 덜 저지를 수 있었을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만 하면 되었을 테니까요. 아무리 돈을 많이 모았거나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리면 그 순간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이렇듯 사랑은 우리들 삶을 온통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하기입니다.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들이 삶에서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이 무엇인지를 적어놓은 책인 「인생수업」에서도 똑같은 배움을 얻습니다. "환상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환상이 제거된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만든 규칙과 환상을 고집하는 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게 하라."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사회적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사랑으로 인해 ‘너’가, 또는 ‘너’의 사랑으로 인해 ‘내’가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 기준으로 당신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린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겸허한 마음으로 당신에게 내어주면 됩니다. 이렇게 사랑을 나누며 나이가 들고 나면 두 사람은 마치 한 사람처럼 닮아 있을 겁니다. 진한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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