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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연경 인천문인협회 이사
농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지만 그동안 무심히 지나쳐 온 강화읍 소재 고려궁지를 다녀왔다. 예전 같으면 아들딸의 손을 잡고 나섰겠지만 모두 직장과 학업으로 서울에서 따로 살다 보니 홀로의 나들이가 익숙해졌다.

 깔끔하게 가다듬어진 가로수는 귀빈을 맞는 의장대처럼 일렬로 정렬해 나를 맞아준다. 궁지로 오르는 주변에는 100년이 넘은 강화초등학교가 늠름한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다. 학교 담장에 걸려있는 옛 사진들이 행인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어 오르막길은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시공을 초월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나그네의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궁지에 들어섰다. 왕궁의 흥망성쇠를 지켜봄 직한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나그네를 반겨주고 있다. 개경의 고려 궁궐 모습을 그대로 보존했다는 문헌과 달리 이곳은 조선시대에 개축했다고 한다. 깔끔한 조경과 어우러진 풍광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저 멀리 강화 읍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강화의 주산(主山)인 혈구산(穴口山)이 영욕의 역사를 간직한 고려궁터를 말 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고려궁지의 역사를 알리는 게시판에 나그네의 눈길을 돌린다.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궁궐이 있던 터라고 적혀 있다.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려 고종은 즉위 19년인 1232년에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이곳에 궁궐을 건립했다. 하지만 39년간 사용했던 궁궐은 몽골과 화친해 환도하면서 몽골의 요구로 성곽까지 모두 파괴해 지금은 터만 남아 있게 됐다. 몽골이 마음을 바꿔 훗날 다시 침입했을 때 고려 조정이 도피하지 못하도록 무능 무력한 고려에 사전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잡초만 우거졌던 쇠락의 궁터엔 조선시대에 이르러 왕이 행차 시 머무는 행궁,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전, 만녕전 등도 건립됐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됐다. 1964년 이곳은 사적 제133호 ‘고려궁지’로 지정됐고, 1977년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돼 오늘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강화 동종(銅鐘), 조선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2013년에 복원한 외규장각만 남아 있다. 높이 198㎝, 입지름 138㎝ 규모인 강화 동종은 숙종 14년(1688년) 강화유수 윤진원 때 승장(僧匠) 사인(思印)비구가 만들었으나 종이 갈라져 숙종 37년(1711년)에 강화 유수(留守) 민진원이 조신(祖信)을 시켜 다시 만들었다고 명문(銘文)에 새겨있다.

 조선시대 당시 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강화 동종은 1963년 01월 21일 보물 제11-8호로 지정됐으며 영구 보존을 위해 진본은 2010년에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이전했고 현재 이곳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다.

 이처럼 보존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병인양요 때(1866년) 프랑스군이 약탈해 본국으로 가져가려다가 무거워 배에 싣지 못하고 갑곶에 버린 것을 강화읍내로 옮겼으며 1977년에 다시 고려궁터로 옮겼기 때문이다. 외침을 물리칠 힘이 없는 나라와 민족은 역사와 문화를 지킬 수 없다는 냉엄한 교훈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이 없음을 절로 깨닫게 한다.

 이 종은 지금의 김상용 선생 순절비 근처에 설치돼 강화읍내 사대문의 개폐를 알리는 신호로 타종돼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명종 16년에 출생한 김상용 선생은 병자호란 당시 청국과의 화의를 적극 반대한 척화파 김상헌의 형이다. 김상용 선생은 조선 인조 때 문신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했다.

 그러나 청군이 강화도를 함락하자 인조 15년, 강화산성 남문 누각 위에서 화약을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했다. 현재 그의 위패는 강화도 선원면에 위치한 충렬사에 봉안돼 있다. 고려궁지를 내려오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동안 조국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께 감사드리며 잠시 묵념을 올려 본다.

▶필자 : 2018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현 인천문협 시분과 모임 총무/논술학원, 도서관, 복지관에서 문예창작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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