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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요즘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 장기 저성장 및 주거환경 악화로 인한 도시 기능의 쇠퇴에 대응해 시민들의 주거 복지와 삶의 질을 개선하고 향후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혁신사업으로 도처에서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될 예정으로 있다.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선정됐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도시개발 정책의 사회적 본질에 ‘개발 이익’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서울역 일대에서 지난해부터 이뤄지고 있는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음식을 매개로 공동체를 회복시키겠다는 신선한 발상으로 꼽을 만하다. 사실 음식이야말로 어떤 지역을 강렬하게 떠올리게 만드는 독특한 힘을 갖고 있다. 심지어 먹어본 적이 없어도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뉴올리언스 도넛 ‘맛’은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간단한 대사 한마디를 만들었다.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음식평론가와 한바탕 설전(舌戰)을 벌인 후 해고당한 셰프 칼이 아들에게 프랑스식 도넛 ‘베녜’를 맛보여 주려고 미국 뉴올리언스의 거리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아들에게 "천천히 먹어. 생의 첫 베녜는 다신 못 먹어. 세상 어디서도 이 맛은 못 내"하고 말한다. 이 덕분에 그곳의 베녜는 전 세계에 입소문이 났고 그 맛이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페루의 리마, 잉카 유적지 외에는 별 볼일이 없었던 남미의 소국에 매년 9월에 열리는 ‘미스트라’라는 음식축제는 인파가 몰려드는 대성황을 이룬다.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라는 한마디에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당일 점심시간 도처에 있는 평양냉면집 앞에 긴 줄이 생긴 것도 ‘그곳만의 음식 맛’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하버드대학의 경제학과 클레이저 교수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위대한 극장들보다는 위대한 식당들이 사람을 끌어 모으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한마디로 도시를 살리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음식이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호수 둥팅호(洞庭湖)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후난(湖南)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후난성은 중국의 혁명가 마오쩌둥의 고향이라는 유명세도 있으나 지역을 가로지르는 샹장강의 이름을 딴 음식 ‘샹차이’로 훨씬 더 유명하다. 이곳에 가서 음식을 맛본 사람들에게 ‘맛의 추억’을 심어주는 곳으로 손꼽힌다. 대표 먹거리 가운데 하나인 ‘라웨이’는 소금에 절인 삼겹살을 굴뚝에다 매달아 훈연한 햄인데 훠궈(중국식 샤브샤브)가 특히 맛이 뛰어나서 "부마(황제의 사위)가 되는 것보다 평생 후난성 훠궈를 먹고 사는 게 좋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이다. 맛있는 음식이 관광객 때문에 그곳에 존재하는 건 분명 아닐 터이고,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소박한 밥상도 강렬한 그리움을 남겨주기도 한다.

 일본의 음식평론가 가쓰미 요이치는 「혁명의 맛」에서 매운맛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맛이 매운맛. 매운맛은 통각이다. 미뢰(미각세포)가 아프고 혀가 쓰라리다. 사람들은 무슨 대단한 용기를 발휘한다고 이 매운맛을 즐기고 찾는가. 희한한 일이다. 고통이 진할수록 중독성이 강한 게 특징이라면 나름 이해가 된다. 바로 혁명의 속성과 닮았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세운 이후에 전담 요리사에게 끊임없이 음식은 매울수록 좋다고 하면서 더 맵게 만들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라 불리는 덩샤오핑도 매운맛을 즐겼다고 한다. 권력자가 즐긴 맛이라고 해서 역사의 수레바퀴와 함께 구르면서 대중 속에 숨 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음식의 힘을 결코 간단치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를 어떻게 바꾸는 것이 재생의 본질인지 묻는 질문에 도시재생의 공간에 ‘더불어 함께 사는 마을’이라는 구체적 장소성의 문제와 ‘삶의 시간성’이란 문제가 그곳에 담겨 있음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답변이 별로 없는 작금에 ‘음식과 지역’을 결부해서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식재료 공동구매, 공동손질, 공동배분을 하는 일차적 목표를 넘어 서울시의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활짝 꽃 피워 ‘그곳만의 맛’을 찾는 행렬이 이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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