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를 찾아서
윌바 외스트뷔 / 민음사 /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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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450여 년 전 해마의 발견에서 시작해 현대의 기억 연구에 위대한 기여를 한 실험과 연구 성과를 짚어 나간다.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떤 과정으로 우리의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는지, 기억을 효과적으로 불러내기 위한 기억 훈련법은 무엇인지, 허위 기억과 망각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를 살피며 기억의 핵심에 다가간다.

 이 책의 두 저자, 신경심리학자 윌바 외스트뷔와 언론인이자 작가 힐데 외스트뷔 자매는 기억이라는 존재가 발견된 때부터 MRI를 이용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억에 관한 여행을 한다. 이들은 뇌 절제술 후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게 된, 기억 연구의 최대 공헌자 헨리 몰레이슨과 그 어떤 것도 잊어버리지 않는 솔로몬 셰레셰프스키의 경우를 기술하는 한편, 현대의 기억 연구에 위대한 기여를 한 유명한 실험들을 흥미롭게 기술하며 기억에 관한 최고의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특히 잘못된 기억, 망각, 기억술과 같은 개념들을 다루며 인간 기억에 대한 유의미한 예시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저자들은 기억의 속성 자체가 지극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기억의 특징은 무수한 망각이며 매일같이 오류를 저지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기억 속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매번 버스를 기다린 일, 매번 가게에 간 일, 소파에서 오후를 보낸 일들과 같은 것들이 모두 기억에 저장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가장 빛나는 특별한 기억의 진주들도 망각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제자리에 남는 건 중요한 요소와 큰 틀뿐이며, 나머지는 우리 기억이 유연하게 재구성하고 그러한 재구성이 기억의 속성이라는 얘기다.

 책에서 들려주는 현대 뇌과학적 연구 실험의 성과로부터 얻은 기억의 기술과 조언들은 일상생활에서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불완전성은 기억의 속성이므로 완벽한 기억에 대해 우리가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에 대해 자신이 없는 사람들, 트라우마나 우울증을 앓는 이들을 비롯해 기억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 또한 우리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임을 일깨워 준다.

 과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해부학에서 시작해 활동 중의 뇌를 관찰하는 첨단 영상기술에 이르기까지 기억 연구에서 가장 유의미한 실험들을 이야기체로 풀어낸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기억의 본성과 작동 방식을 인상 깊게 파악하도록 해 준다.

떠난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지만
진명주 / 와일드북스 / 1만4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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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며느리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오롯이 여행자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녀. 설 연휴를 앞두고 두 달간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자 주위의 반발에 부딪힌다. 떠나기 직전 남편의 여동생이 전화를 걸어와 여행기간 중 설 연휴가 끼여 있음을 상기시키고, 친정엄마에게서 ‘시댁 보기 미안하지 않느냐’는 질타를 받는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팔자 편하게 여행이나 다닌다는 주위의 핀잔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 질타에도 그녀는 결국 아이와 나란히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 누구도 응원하지 않지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비 오는 후에의 거리를, 호이안의 노란 돌담길을, 시엠립의 나이트마켓을, 앙코르와트의 유적지 사이를, 올드 바간의 희뿌연 흙길을, 그리고 차웅따 해변의 모래밭을, 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운 채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베트남을 지나 캄보디아, 태국, 마지막으로 미얀마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의 젊음과 맞바꿨다고 생각한 아이가 어느새 그녀 삶의 위로가 되고 있었음을.

임신중지
에리카 밀러 / 아르테 / 2만4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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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라는 화제는 오랜 금기였다. 월경과 여성 섹슈얼리티를 말하는 것 이상으로 금기시 돼 왔다. 이런 금기로 인해 여성은 임신중지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을 내면화하고 임신중지 경험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침묵이 임신중지에 대한 공적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당사자의 침묵을 대신해 기존에 널리 유통됐던 임신중지를 둘러싼 이야기 전부는 당사자와는 무관한 것들이었다.

임신중지 여성의 목소리가 없는 이 각본에서 여성의 삶은 혼전 순결에서 출발해 결혼한 후에는 모성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표현되며 이 정상적 각본이 강화될수록 혼전 성관계를 한 여성, 아이 낳기를 원치 않는 여성은 수치와 죄책감을 떠안게 된다.

이 책의 원제에는 임신중지를 뜻하는 ‘어보션(abortion)’ 앞에 ‘행복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우리는 과연 행복한 임신중지를 말할 수 있게 될까. ‘행복한’을 비롯해 ‘구원받은 듯한’, ‘감사한’, ‘후회 없는’으로 말해지는 임신중지 경험을 주저하지 않고 나눌 토대를 만드는 데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입체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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