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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300만 시대 인천은 대한민국 제3대 도시이자 7대 특·광역시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지역이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의 증가만 갖고 대한민국 제3대 도시라 할 수 있을까? 과연 명실상부한가? 한때 인천의 지향점이 막연히 명품도시였던 적도 있었지만, 오늘의 인천을 어떻게 특징지어 볼 수 있을까? 인천적인 것, 인천다움의 원천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의 근원적인 실마리는 2030여 년 인천의 역사와 문화유산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030여 년 유구한 역사와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오늘날 광역시 300만의 도시로 거듭 태어난 인천, 이제부터는 역사도시로서의 품격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인천이 가진 문화유산조차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 최초에 해당되는 역사적 사례들이 많은 인천에는 서구 문물이 도입되는 근대뿐 아니라 전근대에도 유일한 것이거나, 최고(最古), 최초로 시작된 사실들이 많다.

 선사시대 최대 규모의 강화 부근리 고인돌, 삼국시대 중국으로 가는 최초의 뱃길인 능허대,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전등사, 남한 유일의 단군 관련 공간인 참성단, 개천대제와 성화를 채화하는 마니산, 13세기 고려 제2의 수도로서 간척의 시대를 열었던 강화도, 또, 최초의 금속활자 주조를 증언해 주는 고금상정예문, 가장 오래된 팔만대장경 조판, 조선시대 유일한 왕실도서관 외규장각, 서해안 일대 국가 제사를 주도했던 원도사 등이 인천의 역사적 역할과 위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더구나 근대의 기점에서 무엇보다 서구와 맺은 최초의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가 인천이었고 이후 영국과 독일 등 서양의 다른 나라들과 맺는 조약의 바탕이 됐으며, 국기의 원형이 되는 태극기가 처음 게양됐던 사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항목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 국기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태극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 인천에서였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역관 이응준이 제작했던 태극기는 이후 미 해군성이 간행한 ‘해양국가의 깃발(1882.7)’, 수신사로 일본을 가던 중 선상에서 제작했던 ‘박영효의 태극기(1882.9)’로 거듭 태어나게 됐고, 국기로서 태극기를 처음 공포한 것은 1883년 3월 왕명으로 태극과 4괘를 도안한 기를 국기로 제정하면서였다.

 그러나 이 당시는 국기 제작에 관한 구체적 명시가 없어 이후 다양한 형태로 제작돼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태극기의 모양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것은 그러한 연유이다. 현재 보존하고 있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고종이 1890년 경 외교 고문이었던 O.N.데니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 태극기는 2008년 8월 12일 등록문화재 제382호로 지정됐다.

 미국과 최초의 통상조약이 인천에서 체결됐다는 사실은 그간 지역 연구자들의 큰 관심사였다. 50여 년 만인 2013년 그 체결 지점인 해관 관리관의 사택 터가 명시된 근거 자료가 세관 연구자에 의해 발견됐고 이어 시사편찬위원회 학술토론회를 거쳐 확정이 됐다.

 그러나 체결 장소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것은 현재 국기의 원형이 된 태극기가 최초로 게양된 곳이 바로 인천 자유공원 언덕 위라는 사실이다. 비록,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태극기의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아 태극과 4괘 혹은 8괘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지만, 인천 개항 전 자유공원 언덕 위에 게양됐던 태극기를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역사적 의미가 있다. 3·1운동 당시 만국공원에서의 만세운동은 물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바탕이 된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자회의가 주도됐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사실은 전근대 인천에서 시작된 최초 사례들과 함께 역사도시 인천의 품격을 나타내는 표징(表徵)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특별시대를 지향하는 지금이야말로 인천의 역사적 가치와 품격에 맞는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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