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모든 국가는 경제체제 또는 정치제도의 유형을 불문하고 제한된 재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국가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여기서 재정은 재(財)와 정(政)의 복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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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익<태영 이엔씨 고문/행정학박사>
전자는 공공경비 지출과 조세징수 즉 화폐의 강제징수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화폐의 유동성, 자본시장, 금융 문제와 관련이 있다.

반면 후자는 국가의 자원배분, 소득재분배, 고용안정, 물가수준, 경제성장, 지역균형발전 등 정책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일찍이 행정학의 태생지인 미국에서 국가 예산의 편성, 집행 및 평가과정의 중요성이 강조됐음은 물론이다.

 예산의 과학적 관리, 계량화와 통계적 기법에 기초한 경제적 분석, 정책결정의 최적화 분석 기법 등이 도입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대규모 국가 주요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feasibility analysis) 제도라고 하겠다.

 올해 초 문재인 정부는 24조 원 규모의 23개 지역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내용의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심의·의결했다. 이는 17개 시도로부터 68조7천억 원에 달하는 32개 사업을 사전 신청 받아 검토한 결과다. 이번 발표의 명분은 비수도권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 사업을 활성화시켜 수도권과의 격차 완화 즉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정부의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증·평가하기 위해 운용돼 왔다. 예산 낭비 방지와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난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법률적 장치라 하겠다.

 본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은 국가재정법상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각종 분야의 사업이 해당된다. 또한 예비타당성조사 평가항목은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세 개로 구성된다. 경제성 분석은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편익을 비용으로 나눈 값이 1보다 클 경우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정책성 분석은 해당 사업과 관련된 정책의 일관성과 사업 준비 정도, 사업 추진상의 위험요인 등을 평가한다. 지역균형발전 분석은 지역 낙후도 개선, 지역경제에의 파급효과, 고용유발 효과 등 지역개발에 미치는 요인을 평가하게 된다.

 사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실정법상 예외 규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문가와 학자들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당리당략에 의해 국가예산운용제도의 근간이 흔들리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예산총괄부서인 기재부가 과거 정권에 비해 지나치게 여당과 청와대에 끌려 다니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야당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내년도 국회의원선거를 겨냥한 정략적 의도에서 추진되는 것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금번 정부의 발표에서 각종 수도권에 속한 경기도와 인천시의 지역사업이 거의 다 탈락하였다. 특히 인천시민들이 간절히 염원했던 인천 송도와 경기도 마석을 잇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노선)사업이 제외된 것은 큰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낙후지역 개발 취지에서 도시철도 7호선을 경기도 포천까지 연장하는 사업(1조)과 인천 영종도와 신도를 잇는 남북평화도로사업(1천억)은 포함돼 있다. 이는 오히려 경인 지역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평가항목의 가중치를 개정하고 2019년 5월 1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종전 평가항목의 가중치는 경제성 35~50%, 정책성 25~40%, 지역균형발전 25~35%였다. 이를 비수도권 사업의 경우 경제성 평가 가중치를 기존에서 5%p 낮추고(30~45%)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는 5%로 변경했다(30~40%). 다만 수도권의 경우 지역균형발전 항목을 제외하고 경제성(60~70%)과 정책성(30~40%)으로만 평가하기로 했다. 이러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상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가 그간 지역균형발전론과 수도권규제로 인해 늘 역차별을 받고 있는 인천시와 경기도에게 긍정적 요인, 아니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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