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미·중 무역 전쟁으로 내년도 글로벌 총생산이 530조여 원 감소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분석이 나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가장 시급한 우선순위는 현재의 무역 긴장을 해결하는 것"이며, "보호무역은 성장과 일자리뿐만 아니라 (제품가격 인상으로) 저소득 가구들에 충격을 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한국경제는 이런 일반론적인 분석보다 더 심각하고 구체화된 위기에 이미 직면해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데다 수출 대상 1, 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이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지금처럼 꼭 들어맞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충격적인 현실은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9.4%로 6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수출의 두 축인 대중 수출(-20.1%)과 반도체 수출(-30.5%)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기술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5G 산업에선 어느 편에 서야 할 지 선택까지 강요받고 있다. 중국 당국자는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며 경고하고, 미 정부 인사들은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다. 정부의 ‘신남방정책’도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사이에 끼어 앞날이 순탄치 않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선택하지도, 대응하지도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을 택하면 중국이 (사드 사태처럼) 경제보복을 취할 게 뻔하고, 중국을 택하면 경제적 타격은 물론 국방·안보 및 생존권 문제로까지 연결되는 한미동맹에 금이 갈 수 있다.

 따라서 가능만 하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현명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경제원칙과 시장질서, 기업자율성에 무차별적으로 개입하며 주인 행세를 하는 정부가 외세의 압력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나 보는 모습은 솔직히 비겁해 보인다. 밖엔 불이 났는데 안에서 알이나 먹겠다고 거위의 배를 갈라서야 되겠는가. 해외로 탈출하지 않으면 고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숨 막히는 반기업·친노동 정책이라도 돌려놓기 바란다. 미·중 정부가 자국의 기업들을 위해 어떻게 하는지 좀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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