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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범 아나운서
언어 논리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대표저서인 「논리 철학 소고」에서 ‘언어는 실재 세계를 묘사하는 논리적 그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고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언어는 세계를 반영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어휘가 풍부할수록 세계를 보는 시선이 넓다는 뜻이 됩니다. 아울러 어휘를 명징하게 쓸수록 사물을 잘 분별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관심은 ‘말을 잘 하기 위해서’ 혹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라는 목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가 인간이기에 우리가 하는 ‘말’을 탐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문의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부모의 말이 바뀌면 자녀의 인생이 바뀐다」의 저자 원기범 아나운서인가요? 혹시 저희 회사 임직원들에게 자녀교육과 관련해서 ‘부모의 말 한마디의 중요성’에 대해서 특강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분은 평소 자녀교육과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검색을 하다 보니 제 졸저와 강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사 임직원 대상 특강 취지에 맞겠다 싶어 강연 부탁을 하고자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나라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교육’을, 자녀를 억지로라도 공부하게 만들어서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보내면 완성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자녀의 관심분야와 적성을 깡그리 무시한 채 ‘자녀를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부모의 욕심만 채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단절, 극단적 선택 등 그와 관련된 여러 병폐와 부작용 사례들은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양육이란 자녀가 무사히 유년기를 잘 넘긴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어른이 됐을 때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고 더 나은 삶을 지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에게 평소 하는 말을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자주 하는 말은 곧 자녀의 가치관과 세계관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 조세핀킴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공부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사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몽골 등지에서 만난 한국 아이들도 한목소리로 ‘공부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고 답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하버드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고 자란 말은 사뭇 달랐습니다. 1위는 바로 "다 괜찮을 거야 (Everything is going to be OK)!"였습니다. 그 부모들은 아이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했을 때,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마다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로 위로해주고 격려해줬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자신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신감을 회복시켜줬으며 다시 한 번 자신을 믿고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준 마법과 같은 말이었다고 하버드 학생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그 밖에도 ‘네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해라’, ‘너는 나위 귀중한 보물이다’, ‘항상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하시는 아빠에게 잘 하렴’, ‘널 낳아주고 길러주시는 엄마를 공경해라’ 등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공부’나 ‘명문대’ 얘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자주 하는 말을 탐구해보면 그 사람의 인생관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소 어떤 말을 입에 달고 사십니까? 비단 부모 자식 관계에서 뿐만 아닙니다. 가족, 직장, 공적 사적 모임 등 모든 사회적 관계 속에 우리가 주로 하는 말을 수시로 점검해보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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