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가 형주를 다스릴 때 손권 진영에서 제갈량의 형 제갈근을 시켜 혼담을 넣었다. 관우가 화를 버럭 내며 "내 호랑이 같은 딸애를 어찌 강아지 같은 자식에게 시집 보내느냐? 헛소리 마라. 내 당신의 동생 안면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당장 참할 것이니라" 하면서 내쫓았다.

 이 시기에 정략결혼은 흔했다. 대표적인 예가 손권의 누이동생과 유비가 결혼한 일이고, 조조 역시 딸을 후한 마지막 황제에게 시집보냈다. 이외에도 딸을 권세가나 손잡을 필요가 있는 자에게 바치듯이 해서 인척관계를 맺어 사익을 도모하는 건 비일비재. 관우는 이런 세태에 호통을 쳤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오늘날 결혼 연령이 점점 늦어지는 이유가 여럿 있겠으나 과거처럼 부모가 혼처를 정한다거나 경제력 등이 약한 여자 입장에서 빨리 혼처를 구해야 했던 것이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지긴 했으나 무엇보다도 여자를 인격적으로 독립적으로 대우하는 풍토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관우가 충절, 의리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페미니스트의 원조쯤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삼국지리더십연구 제공>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