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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소설 「에코토피아」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이 나라가 세계의 여러 국가들과는 정상적 관계를 유지하지만 미국과 철저히 단절돼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이 나라의 실상을 현지에서 직접 체험을 통해 공평하게 평가하기 위해 뉴욕의 신문기자 윌리엄 웨스턴이 방문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미국으로 상징되는 정치와 경직된 사회구조, 그리고 오로지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세계에 대해 원칙을 내세워 반대하는 비판적 지성과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웨스턴 기자는 ‘수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아내고 에코토피아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며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 6주간에 걸친 취재 여행을 떠났고 마침내 7주째 접어드는 날 뉴욕에서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며 "내 몰골은 끔찍했다. 더 이상 사람 같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나는 뻣뻣하게 굳어진 모습이었다. 너무나 기가 막혀 나는 털썩 주저 앉았다"라고 썼다. 그러고 나서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 시민으로 살기보다 "에코토피아에 남겠다"고 부르짖는다. 수치상으로 미국인 한 명이 줄고 에코토피아 거주만 하러 가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실로 세계를 바라보는 창(窓)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은 전쟁이 없는 세상, 평화롭게 인간적으로 사는 세상을 외쳤으나 실상은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세계는 양대 진영으로 분열돼 으르렁거렸다. 냉전시대라고 불렀지만 뜨거운 전쟁도 있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은 월맹이 인근 국가를 위협하지 못하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군대를 보냈고 2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폭탄을 월맹에다 퍼부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뜻있는 많은 이들이 미국의 개입과 군사적 대립에 반대했다. 그리고 물질적 가치에만 좌우되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따져 물었다. 더 나아가 전통과 행동규범 자체를 의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권위주의를 폐지’하고 ‘모든 영역에서 기초 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목청을 높였다. 여기서 기민운동의 새로운 싹이 돋아났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정치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이자 연구기관인 ‘로마클럽이 연구 결과를 모아 「성장의 한계」라는 책을 내놓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기초로 미래를 예측한 이 보고서에서는 강대국들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세계의 자원을 계속 남용하고 자연적 생활공간을 파괴한다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인류는 대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충격적 보고서에 놀란 수많은 이들이 자원 남용과 자연 파괴에 대한 저항운동에 나섰고 많은 지성과 젊은이들이 대안으로 새로운 생활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미국인 어니스트 칼렌바크가 소설 「에코토피아」를 발표한 것이다. 에코토피아의 정치체제는 서구 민주주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우선 제도와 관료들의 권력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책임감을 높이 평가하며, 지방자치권이 크게 확대돼 있고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적극적인 헌법적 권리가 충실히 이행되고 있다. 교육은 몹시 중시되는 국가에 감독하는 기관은 없고 학교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사기업으로 교사들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고, 부모들도 원하는 학교에 자유롭게 자녀를 보낼 수 있다. 종교 문제에 있어서도 사제나 교회를 요구하지도 않으며 어디서도 신에 관한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웨스턴 기자는 마지막 취재기를 송고한다. 에코토피아의 산업 생산력과 생활 수준은 미국보다 훨씬 낫고, 에코토피아의 공기와 물은 어디서나 수정처럼 맑고 땅은 기름지며 건강한 자연이 어디에서나 넉넉하게 존재한다. 국민을 위한 보건과 복지도 훌륭하다고.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무역 분쟁이란 이름 앞에 군사적 대립은 물론 문명의 대립이라 불릴 정도의 갈등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냉전이라는 표현도 하고 있다. 세계는 미국 편과 중국 편이 갈라져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제2에코토피아가 머잖아 나와야 할 때가 된 걸까. 우리 모두가 그걸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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